9월22일 저녁 KBS "황정민 인터뷰" 프로에는 울산시 울주군이 태풍 "매미"의 대표적인 피해지역으로서 단일 시·군으로는 전국 최대규모인 ‘784억원’의 피해 실상이 소개되어 전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정책전문가로서 국회에서 십 수년간 활동했던 필자는 태풍 직후인 9월18일과 19일 고향 울주군민들이 걱정되어 이틀간 피해 농어민을 만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 농협 조합장은 실태조사에는 재해보험에 든 울주군 과수재배농가가 전국 평균 20%보다 다소 높은 24%에 달한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면적별 기준이며 실제 보험에 든 개별 과수농가는 10%에 불과해 영세 과수농가에 대한 지원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특히 울산 배 명성을 대변하는 삼남면과 서생면의 피해는 낙과율이 높아 예상외로 컸고 12개 읍·면사무소는 예외없이 태풍 실태 파악과 보상 방안을 논의하는 이장 회의, 컴퓨터 집계작업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서생면은 어촌 전체가 폭격을 맞은 듯 제방이 유실되고 바닷가 마을 전체가 한 겨울의 을씨년스러운 황량한 모습으로 변모해 있는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 복구를 위해 밤잠을 잊은 이봉근 면장이 나가있는 나사마을은 군부대의 지원을 받은 포크레인으로 유실된 제방을 복구하는 작업에 착수하고 있었으나 전면에 쌓은 300m 제방은 형체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어디서부터 복구의 손을 대야 할 지 난감해하는 지경이었다.

 나사마을 어촌계장 이영두씨는 주민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않고 방파제 공사를 해 항구 구실을 하지 못하고 태풍 피해만 키운 당국의 무능한 행정을 탓했다.

 "왼쪽에 설치한 방파제 둑을 오른쪽 육지 돌출부 방향으로 쌓았어야 하는데 그 방향부터 잘못되었습니다. U형으로 된 바닷가로 바다에서 들어오는 유수(流水)가 돌지 않게 방파제 겸 마축간을 직선으로 함께 쌓았어야 하는데 내버려 두어 태풍 피해를 더 입게 되었습니다. 또 유수로 인한 모래 퇴적으로 해면이 낮아져 이제는 10t 배는커녕 2t급도 접안을 못하고 있어 방파제 옆에 설치된 크레인 장치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울산시에서 공청회를 거쳐 방파제를 쌓았더라면 이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130명의 사망실종, 4조원이 넘는 엄청난 재산 피해를 입은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공동대피 대책과 내진(耐震)설계 등 항구적인 안전장치 구축으로 특별한 피해 없이 이겨냈으며, 미국도 태풍 매미보다 풍속이 3배에 달하는 허리케인 태풍 "이사벨"을 별다른 인명피해 없이 극복해 냈다.

 이제 우리나라는 해마다 위력을 더해 가는 태풍에 대비해 범정부적 차원에서 선진국 수준의 재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울산광역시도 주민 안전과 유리된 전시행정적인 구태에서 벗어나 이번 태풍 피해에서 나타난 사고 사례별 원인분석을 통해 어떠한 태풍도 막아낼 수 있는 항구적인 중장기 재해대책 수립이 긴히 요구되고 있다.

 피해 농어민에 대한 자립 의지를 되살릴 수 있는 중장기 저리 융자, 가옥 파괴에 따른 주인 및 세입자까지 고려한 선(先)보상, 낙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공판장 설치, 보상에서 제외된 300평 미만 영세농 보상책, 모호한 보상규정으로 인해 가입을 꺼리는 농어민의 이익을 반영시킬 수 있는 재해보험 공동가입 추진, 태풍 강도 등 여론수렴 절차를 거친 항구시설 보강공사 및 특별예산 지원책 마련 등 중앙부처와의 정책적 연계 외에도 울산광역시 차원에서 시급한 방재(防災) 및 주민 피해 보상과 자력갱생의 자구책이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게 장단기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사전에 선박을 대피시켜 태풍피해를 막은 울산 북구 강동면 공무원의 솔선수범 사례는 마음만 먹고 민·관이 합심 노력한다면 재해를 막을 수 있다는 좋은 실례를 보여준 것이다. ksshin100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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