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리(明山里)는 정조(正祖) 때 강월리(江越里)라 하였다가 고종(高宗) 31년에 강월(江越), 연산(延山), 용동(用洞)으로 갈라져 있었던 마을이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강월과 연산(連山)에 용동(龍洞)의 용연(龍淵)을 합해 명산리라 하고 서생면에 편입시켰다. 강월리는 고종 31년 이래 강월이라 불렸는데, 효암강의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므로 하민등(下岷嶝, 연산 連山)에서 보면 달이 뜨는 마을, 즉 달이 뜨면 이곳에 달빛이 먼저 비친다고 해서 "강월(江越)"이라 했다. 또 강 건너 편에 있다고 하여 "간월(江越)"이라 하다가 강월(江越)로 아화(雅化)한 듯 하다. 현재도 이곳을 흔히 강월내(江越川)라 부르기도 하는데, "내(川)"는 사람이 사는 터전 또는 땅을 예로부터 "내"라 하여 "川·內·乃·壤·奴·惱·難·奈·那·來" 등으로 차자하여 왔다. 지역적으로 보면 강월은 명산리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강월에는 15가구 이상은 살지 못한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이는 15일(보름)이 지나면 달이 기우는 이치와 같이 15가구 이상이 되면 누군가가 이 마을을 떠난다는 말에서 연유된 듯 하다. 하지만 우물의 양이 15가구 분량으로 한정돼 있었다는 등의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이 없다.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어떤 신비한 현상이 벌어졌다든가 하는 일도 실제로 일어난 적은 없다고 한다. 아마도 다른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았던 이야기인 듯 싶으나 아무튼 은연중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부담을 주고 있지는 않는지 모를 일이다. 서생면지에 따르면 이곳의 가구 수가 9가구(2001년 기준)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서울의 강남지역은 면학환경이 좋고 거주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등 여러 이유로 주거수요에 따른 희소성이 감소하지 않고 있어, 전국의 집값 상승의 진원지로 지목받고 있다. 정부가 조세부문이나 토지정책으로 열기를 식히려고 노력하지만 좀체 불씨가 식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 곳 영동지구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던 1970년에 강남·서초 양 구의 가구 수는 모두 8천호에 인구는 4만명이었으나 30여년이 지난 2002년에는 가구 수 33만호, 인구 94만명으로 가히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부동산가격 폭등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주기는 29일이다. 신월(新月 new moon)로부터 다음 신월까지가 달의 하루에 해당되며, 신월은 15일 후에 만월(滿月 full moon)이 되는데 이것이 보름의 계산방식이다. 보름달은 정월 대보름날이 가장 밝다고 하니 그 밤에 서울의 목멱산(남산) 봉화대에 훤하게 불 밝히고 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강남을 강월로 땅이름을 바꾸는 흥겨운 춤판이라도 한판 벌여보면 어떨까. 강월의 경우처럼 거주 가구 수를 정해 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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