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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경상시론
[경상시론]사회지도층의 행동철학국가·사회에 대한 책무 기억하고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 치유 노력
역사속 변함없는 사회지도층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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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7  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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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규 울산발전연구원 전략기획실장·박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나 그 기원은 오래되었다. 그리스·로마시대 귀족들은 병역과 기부활동 등 신분에 맞는 자기 헌신을 도덕적 의무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사회지도층의 책임의식은 국가와 사회가 어려울 때마다 다양한 형태로 역사에 등장한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항구도시 칼레는 영국군에 포위당해 항복하게 된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칼레를 대표하는 6명을 처형시키는 것을 항복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시민들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 도시의 지도자들이 죽음을 자청하고 나섰다. 교수대로 모여들던 사람들의 비장한 모습은 이후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라는 조각상으로 기록되어 전해졌다.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한 영국의 유서 깊은 사립학교 ‘이튼 칼리지’의 경우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졸업생 20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건국의 주역인 모택동의 큰 아들 모안영은 한국전쟁 중에 전사했다. 후에 모택동은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이유에 대해 ‘다른 사람의 자식들만 전쟁에 내보낸다고 하면 나를 어떻게 지도자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최근 법무부장관 임명을 두고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세대 간 갈등 또한 심화되고 있다. 특히 청년세대의 분노가 큰 상황이다. 주요 언론들은 이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박탈감을 주요인으로 보고 있다. 현 정부와 새롭게 등장한 정치세대에 대한 배신감, 출신성분에 따른 박탈감이라는 것이다.

현 정부의 출범에는 기성세대와 ‘88만원 세대’에 끼인 현실에 분노한 청년세대가 큰 힘이 되었다. 정부 역시 청년들에게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고 청년들은 ‘기회가 평등하지도 과정이 공정하지도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결과가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86’세대(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 생)의 이중성이 드러난 것도 청년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베이비부머의 끝자락을 장식한 60년대 초반세대들에게 경쟁은 하나의 생존양식이었다. 이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신분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타는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교육열을 바탕으로 ‘개천에서 용났다’를 외쳐야 했다. 요즘 사용되는 ‘금수저, 흙수저’ 같은 용어는 없었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다 보니 출발선은 그나마 평등했었던 시절이었다.

‘86세대’는 역사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정치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세대이기도 하다. 민주화시대의 중추세력으로 군부세력을 포함한 기득권세력에 반감이 매우 컸다.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매우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며 진보세력의 큰 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 그들이 정치적으로는 진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기득권 세력에 편입된 것처럼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영향력 있는 부모를 두거나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또한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부모가 가진 사회적 신분이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세습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비록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변칙을 이해하는 것도 박탈감을 더 크게 만드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과거 신분제에 존재하던 귀족계층이 점차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왔다. 비록 명칭은 바뀌었다 하더라도 사회지도층은 그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에 희망을 주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치유하는데 더욱 헌신해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챙길 수 있는 모든 개인적 이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회지도층이 해야 일이 아니다.

‘86세대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왔나요?’라고 묻는 젊은이들에게 막연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은규 울산발전연구원 전략기획실장·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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