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문 전 울산강남교육장

남보다 많이 가졌고 더 많이 배운 어느 부모의 자식농사 때문에 온 세상이 시끄럽다. 자식을 길러본 부모라면 정말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농사가 아니던가? 농사는 대개 1년 만에 결실을 보지만 자식농사는 20~30년 동안 정성을 쏟아 가꾸는 농사이니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 “자식이 원수다”라는 말까지 있다.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데 절대로 불법과 편법 등의 요령이 통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그것이 바로 농사일이요 자식농사다. 자식 키우는 것이 농사짓는 이치와 같다고 생각하는 부모라면 절대로 무리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농사꾼이 제시기에 파종하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농사꾼은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비가 많이 오면 많이 와서 걱정이고 가물면 비가 안와서 걱정이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들을 비바람을 안 맞히고 온실 속에서만 키우려고 한다. 남보다 몇 배나 비료를 뿌리다가 뿌리가 시들고 썩고 만다. 비바람을 맞고 자란 뿌리가 더 튼튼한 줄 잘 모른다. 옛 부터 자녀교육을 일러 자식농사라고 표현한 까닭이 이렇게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6국을 통일해 만리장성을 쌓고 자손들이 영원히 황제를 계승토록 했지만 자식농사는 실패했다. 그가 죽고 난 후 보위를 이어받은 아들 호해(胡亥)는 조고라는 환관에 놀아나서 결국 진시황 사후 4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망국의 비운을 맞았다. 공자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를 직접 가르치지 않았고 맹자 역시 직접 가르치지 않았다.

제자가 이유를 물었더니 맹자는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르게 하라고 가르친다. 그렇지 못할 때 노여움을 띠게 되고 부자간의 정리가 상하게 되니 그 보다 불행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하고 대답했다. 세종대왕 밑에서 18년간이나 정승으로 봉직한 황희 정승도 바람둥이 아들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았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할지라도 자식농사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이렇게 역사가 남기고 있다.

그러나 농사꾼의 자세로 어렵고 힘든 자식농사를 잘 가꾼 사람들도 있어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한다. 1971년 타계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씨의 유언은 아직까지 우리들의 코끝을 찡하게 한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떠나면서 그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두 제대로 공부시켰으니 너희들이 자립해서 살아라. 학교 다니는 손녀의 학비를 위해 주식 배당금 1만 달러만 물려주겠다.” 이렇게 눈을 감으면서 자식들이 비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적응해 가도록 자식농사를 짓고 갔다.

신사임당도 4남 3녀를 훌륭한 인재로 키웠다. 신사임당은 자식농사를 인본(人本)정신과 수신을 강조하는 인성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뜻이 없는 곳에 행동이 없고 행동이 없는 곳에선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다.”고 가르쳤다.

동양대학교 최성해 총장의 맏아들 웅식씨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지난 6월 보스턴 칼라지를 졸업하고 장래가 보장되는 뉴욕의 세계적인 금융회사인 골드먼삭스에 입사했으나 일주일 만에 아버지의 권유를 받고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가장 힘들다는 해병대 입대를 결정했다고 한다. 남다른 자식농사의 결실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자녀들을 내버려 두었거나 너무 과보호로 온실 속에서만 자라게 하여 그 결실이 잘못되었다고 후회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농사꾼의 자세를 가진 부모라고 할 수 없다. ‘자식농사란 저하기 반 키우기 반’이라는 속담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비록 편법을 써서 자식농사를 지어 이익을 조금 봐도 후회는 평생가는 법이다. 농사는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두는 일이다. 인간은 자업자득을 벗어날 수 없다. 거짓의 씨를 뿌리고 성공의 열매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자식을 둔 우리 부모들은 농사꾼의 자세로 자식농사를 지어야 한다.

윤정문 전 울산강남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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