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0년 전만해도 다른 나라의 문화를 쉽게 접하지 못했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특혜’를 받을 경우 눈 앞에 낯설고 진기한 풍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맘만 먹으면 세계 어디든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게다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의 진귀한 문화나 풍습을 쉽게 접하게 됐다. 그렇다보니 낯설던 문화가 익숙해졌으며, 정서적으로 다른 문화를 인정하려는 관용 정신이 많은 이들에게 꼭 갖춰야 할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다.

도덕으로 옳고 그름이 각 문화마다 다를 수 있다는 관습적 상대주의를 쉽게 받아 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고기를 식용으로 삼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특정 문화의 기준에 달려 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인지에 대해 시대마다, 문화마다 조금씩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말로 도덕적 옳고 그름에 관한 객관적인 기준은 없을까? 여성 할례는 여전히 몇몇 나라에서 풍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어린 여성의 성기 일부를 잘라내는 풍습이다. 마을의 어르신들은 ‘피부가 고와진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아진다’라는 이유를 들며 할례를 부추긴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된 의료 기구도 없이 행해지는 할례는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르게까지 하며, 살아 남더라도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가게 만든다.

십대 미만의 어린 아이를 50대, 60대의 남성과 결혼시키는 조혼 풍습은 어떠한가? 어린 아이들은 남성의 부와 맞교환되어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결혼 생활을 해야만 한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딸이나 여자 형제를 아버지나 남자 형제가 살해하는 명예 살인은 또 어떠한가?

모든 풍습이 다 허용될까? 여성 할례, 조혼, 명예 살인도 그 문화권에 따라 옳은 선택이 될 수 있을까? 할례가 피부 고와짐이나 남편과의 돈독해짐에 이유가 되지 않는다면? 결혼은 두 사람의 자발적인 동의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옳은 것이라면? 가문의 명예를 깨끗하게 만드는 데에 자녀를 살해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풍습이 악습이 되는 조건에 관해 우리는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울산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철학박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