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뿔이나 유전자 교정같은 과시로
경쟁에만 치달으면 반인륜사회 초래
건강사회 위해선 타인에 대한 배려를

▲ 김광수 서강대 로스쿨 교수

선암저수지 주변의 산과 들 그리고 골짜기는 소먹이기 좋았다. 해가 중천에 떴다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소를 말뚝에서 풀어 산에 놓는다. 그러면 소들은 무리를 지어 풀을 뜯는다. 소들의 세계에는 질서가 명확하다. 대장 소가 앞장서고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부하 소들은 앞서지 않고 따라간다. 소는 싸움으로 지위를 결정한다. 단단한 뿔을 상대 소에 들이받기도 하고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기도 한다. 여기서 밀리면 지는 거다. 대장소의 뿔은 날카롭기도 하고 뭉툭하기도 한데 십 수 년을 싸우고 이겨온 연륜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

사람의 뿔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자존심을 상할 때 우리는 ‘뿔이 난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하여 새 옷을 산다거나 명품 가방을 산다거나 고급시계를 산다거나 하여 마음의 위안을 찾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를 차별할 수 있는 귀한 재화를 위치재(positional goods)라고 한다. 사치재와 유사하지만 사회 내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저 유명한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어느 지방 귀족의 저택을 보고 그 화려함에 놀라고 마음에 뿔이 나서 베르사유 궁전의 축조를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국의 왕이 그러하니 일반인들도 기회만 되면 나를 과시하려는 재화를 구하려고 함은 상정이다. 능력만 된다면 물건은 비쌀수록 좋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구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위치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므로 사회적으로 득이 되지 않는다. 그 폐해를 방비하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부에서 강제적으로 막는 것이고 둘째는 문화적인 성숙에 의한 극복이다. 이탈리아 북동부의 베네치아는 수상도시이고 주요교통수단은 배다. 중세시대 귀족들은 곤돌라에 화려한 색칠을 하고 금색을 입혀서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이에 정부는 소모적 경쟁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곤돌라의 색깔을 검정으로 통일하고 일체의 장식을 막았다. 지금도 베네치아의 곤돌라는 검정색 일색이고 모양도 규격화되어 있다. 성숙한 시민에 의한 해결은 스위스의 예에서 찾을 수 있다. 스위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과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농업이 주업이던 시절에는 당연히 유럽의 빈국이었고 용맹스러움을 밑천으로 다른 나라의 용병으로 벌어서 고향의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런데 지금 스위스는 시계 등 정밀 공업이 발달하여 국민소득이 8만4000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고의 부국이다. 그런데도 스위스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자랑하지 않고 남들이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극히 외양을 수수하게 차리고 다닌다고 한다.

염색체의 구조가 밝혀지고 생명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자의 조작도 가능하게 된 모양이다. 탈렌이나 크리스퍼-카스9과 같은 일반인들이 잘 들어보지 못하는 유전자가위가 개발되어, 이를 이용하여 유전자 교정 혹은 유전자 편집이 이론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 각국이 유전자 조작에 대하여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어서 난치병의 치료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엄격한 규제국가에 속한다. 무분별하게 유전자조작이 허용되면 이를 통하여 머리가 좋고 신체적으로 튼튼하며 인물도 좋은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부모의 욕망이 커질 것이다. 아이들이 과학·기술의 힘으로 생산되는 반인륜적인 사회의 위험성을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을 통하여 경고한 바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성을 파괴하지 않는 안전한 테두리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 경쟁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다소 동떨어진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걱정스럽다. 진영논리와 이분법적 사고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 처음에는 우리 사회의 발전방향을 두고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대립이 격화되다 보면 남을 인정하기 어렵게 된다. 타인은 이기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같이 살아야 하는 동료이다. 건강한 사회유지를 위하여 스위스 식의 남에 대한 배려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제 서로의 뿔을 감추고 자중할 때가 아닌가 한다.

김광수 서강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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