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변화를 이끄는 소수의 외침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방법

▲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신문 보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머리를 짧게 자른 여성은 기생 강향란이었다. 1922년 서울 광교에 있는 중국인 이발관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양장을 입었다고 한다. 개화사상이 들어온 이래 수십 년 전이 흘렀고 조선총독부가 설치된 지 십년 넘게 지났음에도, 여성의 ‘단발(斷髮)’은 논란을 일으키는 사회적 사건이었다.

이런 여성 단발에 대해 남성들은 ‘구역질이 난다’며 비난했고 사회적 반응 또한 차가웠다. 1925년 8월에는 허정숙, 주세죽, 김조이 같이 교육 받은 신여성들이 집단으로 단발을 단행했다. ‘단발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지탄받을 행위가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른 개인적 습속의 개량일 뿐이다’라고 선언했다. 1920~30년대의 여성들에게는 머리카락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 정치적 발언의 극적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세대 전인 1895년만 하더라도 조정에서 발표한 단발령에 대한 남성들의 저항이 극렬했다. 그들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머리카락을 자르느니 차라리 목숨을 내놓겠다며 항거했다. 그렇지만 점차 단발한 남성이 늘어나면서 1920~30년대에는 각자가 선택하는 개인의 습속으로 바뀌었다.

그에 반해 여성에 대한 봉건적 사고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3·1운동 당시 발표된 독립선언서는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한다”고 선언했지만,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권과 자유를 가진 평등한 주체라는 인식은 미약했다.

1922년에 발표된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에는 두 부류의 여성이 등장한다. 도쿄에서 유학하던 주인공은 첫 아이 출산 뒤 병을 앓던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길에 오른다. 그는 아내가 죽자 “더 산다고 해야, 하나 낳을 자식을 두셋 더 낳았을 것밖에 별 수야 없겠지마는 좀 더 따뜻이 해주었더라면 하는 후회도 난다”며 뉘우친다. 여성은 그저 출산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소설에는 주인공의 아내와는 딴판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거나 신식학교를 다니는 신여성들도 등장한다. 소수의 신여성들은 구식 여성과는 달리 근대 교육을 받고 신문물을 접할 기회를 가졌지만, 그들 역시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역사에서 1920~30년대는 식민지적 근대의 시대로 기록된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세력에 의해 항일운동이 전개되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상생활의 영역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본을 거쳐 신식 문물이 들어오고 근대 교육이 확산되었다. 자본주의적 공장이 설립되면서 노동자와 노동운동이 등장했다. 여성을 비롯해 차별받던 사람들의 권리 의식이 고양되었다. 유행하는 양장을 입은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이 쇼윈도를 구경하면서 도시의 거리를 거닐고, 대중가요와 대중가수, 영화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콩쿨대회가 개최되어 울산 출신의 고복수 같은 인기가수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 인구의 7할 이상은 여전히 전통적인 농촌에서 살아가는 영세한 농민이었으며 그들 다수는 초근목피에 의지해 겨우 춘궁기를 넘기는 실정이었다.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딸을 팔아넘기는 부모가 있었고,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버리고 만주나 일본으로 향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다양한 존재들, 이질적인 문화와 목소리가 공존한다. 서로 무관심한 경우도 있지만 상호 비난하거나 대립하는 경우도 많다. ‘구역질 난다’는 표현처럼 상대에 대해 감각적 적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옳고 그름을 생각하기 이전에 ‘싫다’라는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

일제시기나 독재치하에서는 힘의 우열에 따라 소수의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제압당하거나 배제되었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전한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 심지어 상호 적대적인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기 위해 마련된 규칙이다. 상호인정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적 가치인 것이다.

상호인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각자의 다름이 지향하는 가치를 시대적 흐름 속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당시에는 ‘여성의 단발’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힘센 주류였지만, 역사는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단발을 감행한 여성을 역사적 진보를 선취한 주체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주류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소수의 외침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역사적 변화를 가늠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방법이라는 사실 또한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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