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 인간은 모든 동물 중에서 유희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종이라는 뜻으로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호이징거가 1938년 처음 쓴 말이다. 이때 유희는 주로 게임(play)을 말한다.

 그래서 유희는 즐겁게 노는 일이나 놀이다. 놀이는 먹고, 자고, 숨쉬고, 배설하는 직접적인 생존활동을 제외한 "일"과 대립되는 개념의 정신적, 육체적인 활동을 말한다. 일은 어떤 목적을 가진 수단이기 때문에 강제성을 띄고 얼마만큼의 고통을 동반한다. 그러나 놀이는 즐겁고 자발적으로 행하기 때문에 일과는 독립된다. 유희는 소모적인 것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피로를 풀며 새로운 생활의욕을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즐거움과 만족과 성취를 얻기 위해 혼자서 유희를 즐기기도 하고, 상대와 겨루는 갖가지 게임을 고안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게임속에서 직접 혹은 대리만족을 통해 갈등과 성취와 웃음과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은 사람들이 코미디를 보고 웃음으로 긴장을 푸는 기제와 같다.

 오늘날 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첨단 지식산업으로 각광을 받으며, 감성산업 및 정서서비스 산업으로서 여가 및 오락산업과 맞물리고 컴퓨터와 첨단 디지털 영상기술과 만남으로써 종합예술 산업으로까지 도약하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게임이고 영화나 텔레비전도 다 유희이고 컴퓨터게임도 모두 유희게임이다. 유희는 사람뿐만 아니라 개나 고양이나 호랑이 같은 포유류에서도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를 보면 장난치며 노는 것도 사람이 가장 악의적이고 기만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룻밤에 한 집에서 100억원이 넘는 현금, 수표, 채권 등을 턴 범인 여러 명이 검거됐는데도 1년이 넘도록 쉬쉬되고, 피해자가 오히려 범인을 선처해 주도록 탄원까지 해 그 자비로움이 가히 하늘에 닿은 일. 경찰간부가 오히려 사건은폐 압력을 넣은 어이없음. 대질심문에도 "주었다", "안 받았다"로 결론이 나지 않는 수많은 사건관련자들의 뻔뻔스러움. 선거 때 원도 한도 없이 돈을 썼다고 자랑할 수 있는 자유. 수십억원도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라고 떼를 쓰는 후안무치. 수십억원을 그냥 공짜로 사과상자에 담아 갖다 주는 미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닌 조용한 아침부터 웃기는 나라.

 목숨을 걸고 입국하려는 탈북자들이 있는가하면 원정출산으로 이민으로 탈출하려는 사람이 줄을 서 있는 혼란스러움. "단돈 일원"이 수사만 끝나면 "100억"이 돼 나오는 요술. 교육을 시험문제로 풀지 않고 정치문제로 풀어 전 국민들을 우민평준화 시키고 있는 역사적 범죄. 한쪽에서 열심히 잡아 놓은 교통사범을 한쪽에서는 한꺼번에 사면하는 은덕. 상가 사기꾼 하나에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지각이 얇은 나라. 결식아동과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학생들의 가슴은 텅 비어도 평양으로 가는 차속은 꽉 차는 불가사의. 무언지도 알 수 없는 "경계인"하나로 온 나라가 풍비박산이 되는 이 지랄. 건국 이래 최대의 미제 미궁의 비리는 누가 뭐래도 역대 대선 정치자금인 미스터리. 발기부전 치료제로 모처럼 나라가 좀 일어서는가 하는 참에 드디어 재신임바람으로 축 처지고 있는 무참함.

 여기에 비하면 전직 대통령의 전 재산 29만원 잔금 통장은 이야기꺼리도 아니다. 한 시민단체가 "밥그릇은 우리가 챙겨줄 테니, 밥그릇 싸움은 이제 그만하고"" 일좀 하시라고, 272명 국회의원에게 밥그릇 하나씩을 소포로 보낸 낡은 기사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때마침 불어온 일진광풍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코미디는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나온 사람의 입에서 "국감이 아니라 코미디"란 말이 나온 난장판이다. 아니 그렇게 봉변을 당하고도 속수무책 입맛만 다시고 있는 TV속 국회의원들의 머쓱한 모습이 코미디 이상의 코미디이고, 차라리 한판 장난의 극치이다. 그야말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희비극(tragicomedy)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요즈음 코미디 천국에서 살고 있다.

 듣기도 거북한 "음모설"이 난무하고 아무리 보아도 "작당"인데 "창당"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막무가내. 그렇게 보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도 "정신적 여당"이라고 우기는 가당찮음. "육체적 여당"도 나올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납량 코미디이다. 그래서 얼굴은 두껍고 땅은 얇은 나라! 패를 지어 놀고, 웃기고들 있는 유희하는 나라! 코미디를 보면서 눈물이 나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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