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신리(德新里)는 정조(正祖) 때 신경리(新庚里)라 했으며, 고종(高宗) 31년(1894)에 덕동·신경·반장으로 갈라져 있었다가, 1911년에 오산·덕동·신경으로 분립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덕동과 신경의 이름을 따서 덕신리라 했다. 온양면에 속해 있었으나 1975년 온산면으로 이속됐으며, 덕신초등학교, 온산중학교, 경영정보고등학교, 온산우체국등이 있다.

 신밤(신배미 : 新庚 신경)은 덕신리의 중심마을로 옛날 박씨가 많이 살 때 땅을 새로 개간해 농토를 이루었으므로 신경(신밤)이라 했다. "신밤"은 "신배미"의 준말인데 "배미"는 "논배미"란 말이다. 논의 한 구역(논도가리)을 논배미라 하며 논배미의 준말이 배미인데 배미의 취음(取音)이 야미(夜味)다. 따라서 "신밤"의 "밤"은 배미에서 나왔으며 "경(庚)"은 배미의 준말 "밤"의 훈차인 것이다. 신밤(新庚)은 새로운 논배미라는 말로 새배미(新夜味)에 형성된 마을이란 뜻을 가졌다.

 신밤 북쪽에 울벌(鳴蜂)이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울벌의 지형이 벌(蜂)의 우는 모양이라 하여 울벌을 새김으로 명봉(鳴蜂)이라고 하였다 한다. 울벌은 신밤에서 먼저 이루어진 마을로 떵떵 거리며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시기하던 사람들도 없지 않아 살림이 기울어짐에 따라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울고 떠나 마을이 비었다 한다. 울고 떠난 곳이라 하여 울벌(鳴伐)이라 전한다. 지금은 모두 새로 들어 온 사람들이 다시 마을을 이루어 다시 잘 사는 마을로 바뀌었다.

 여기서 울벌에 대해 다시 고찰해보면, 울벌의 "울"은 그 연장음이 "우리"로서 이 "우리"는 ""(光明)"에서 온 말이다. 하늘(天)의 원어는 대광명 내지 대국토(大國土)를 의미하는 """이 변한 것이라 한다. "벌"은 옛 지명에 "伐·弗·火·原" 등으로 차자(借字)되는 들(野)인 것이다. 그러므로 "울벌"은 "밝은 들·광명한 들" 등의 훌륭한 뜻을 가진 이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밤의 자연마을이었던 울벌 사람들, 인근 일대를 울리며 잘 살았다던 그들을 울며 떠나게 만든 데는 혹시 숨겨진 어떤 원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잘 사는데 대한 주위의 시샘도 있었음 직하다. 하지만 정작 그보다는 오히려 "밝고 광명한 들판"이라는 원래의 미래지향적인 훌륭한 마을이름을, "언젠가는 울며 보따리를 싸서 떠나고야 말 이름"으로 곡해한 주위의 강압적인 몰아붙임이 끝내 그들을 떠나가게 만든 것은 아닐까.

 땅이름은 본래 지은 동기와 이유가 명확했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땅이름을 나타냈던 언어의 의미를 잊게 된 경우가 많았다. 땅이름은 그 지역의 지형이나 위치, 산천의 관계, 지질이나 땅 빛깔, 기후·풍토·산물·교통관계 등 여러 가지 자연적 상태나 인위적 상황에 따라 붙여졌다. 울벌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표기기호를 한자로 병용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고유어와 한자어 땅이름을 뒤섞어 쓰면서 불러일으킨 이 같은 오해가 그곳에 터 잡고 잘 사는 사람들에게 무형의 큰 피해를 주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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