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확인된 울산읍성의 유구가 성토를 통해 묻혀 잊혀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대개 땅 속에서 발굴된 유적은 흙으로 덮어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 가장 안전한 보존법이라는 것이 우리 문화재계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또는 전혀 다른 장소에 의미 없는 모형 전시를 해놓고는 출토지를 원래 목적대로 개발하기도 한다. 울산에서도 환호의 발굴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검단리주거지는 흙으로 덮어버려 위치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됐고, 논농사 흔적이 발굴돼 현장보존 주장이 강하게 대두됐던 옥현주거지는 모형전시장을 조성했다가 지금은 아예 전시장조차 폐기되고 없다. ‘청동기 울산’이 잊혀진 것이나 다름없다.

울산읍성의 유구가 발견되기 전까지 조선시대 울산이라는 고을의 정체성은 문헌상으로만 확인이 가능했다. 기록상 1477년 완공돼 1597년까지 실재했던 울산읍성은 북정동~교동~성남동~옥교동에 걸쳐 있던 높이 15척(약 4.5m), 둘레 3639척(약 1103m)의 성곽으로, 울산이라는 고을의 실체를 말해주는 근거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500여년 전 마을의 실체가 고스란히 땅속 2m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도시의 정확한 규모가 어떠한지, 지형은 어떠했는지 등을 규명해볼 수 있는 실체적 자료이자 관광도시를 꿈꾸는 원도심의 역사적 가치를 한껏 높여주는 자원이기도 하다.

문제는 후속 발굴과 유구의 보존과 활용이다. 이번 유구의 확인은 작은 정원 조성을 위해 간단한 발굴조사를 하다가 얻어낸 의외의 성과다. 도심 한가운데 자투리 땅에서 찾게된 진귀한 보물인 셈이다. 그동안 울산시 중구가 문헌과 도시발달과정으로 추정한 성벽을 따라 어렵게 ‘울산읍성길’을 조성해놓긴 했으나 이번에 유구가 확인된 위치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후속 발굴 조사가 매우 절실하지만 주변에 집들이 들어차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부분적으로라도 발굴이 가능하도록 울산시와 중구가 문화재청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건립중인 시립미술관의 개관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관광도시가 되고자 하는 울산 원도심의 입장에서는 이번 울산읍성의 유구가 더없이 소중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복원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흔적이 전해지는 유적이라면 가능한 원형을 보존, 개방(공개)해서 현재와 미래의 가치로 환원,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울산 중구는 원도심이라는 정체성을 도시의 미래적 가치로 삼고 있는 곳이 아닌가. 신속한 후속조사와 함께 관광과 학습의 장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보존방안도 활발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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