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길춘 울산바둑협회 고문·유석회 회장

11월 초순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는 딸집을 방문하면서 한중역사연구회(회장 박상일)에 참여하고 있는 둘째와 함께 이곳에 망명해 일제에 항거했던 애국지사들이 걸어간 그 고난의 길을 따라 탐방하는 시간을 갖고 숙연함에 마음을 가다듬는 기회를 가졌다.

마침 11월17일이 제80회 순국선열의 날이라 나름 더 의미가 깊었다. 역사는 흐르고 또 흘러가지만 우리 후손은 조상이 남긴 위대한 발자취를 결코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역만리에서 피눈물을 토했을까?

역사투어를 통해 항일독립운동사에 큰획을 그은 선열들의 흔적을 더듬고 북경시내를 일주하였다. 특히 주요인물이면서도 잘 알려지지않았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얼이 깃든 모든곳을 돌아보았다.

이외에도 상록수 소설을 쓴 심훈, 청포도를 읊은 이육사 선생 등 여러 민족지도자의 거주지와 활동장소 등을 찾아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교류하며 망국의 한을 달랬는지 살펴볼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실제 국내에선 항일독립투쟁사에 관해 안이한 해석 등으로 그릇된 역사교육을 하고있지 않나하는 우려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신채호 선생은 사학자로서 민족계몽운동을 하다 이곳으로 망명해 독립청년단의 단장이 되고 상해임정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조선상고사를 집필하며 민족혼을 불살랐다. 은거해 살던 거주지와 회의장, 신혼집 등 전전하던 곳을 둘러보았다.

그는 중화일보에 백편이 넘는 독립에 관한 논설을 기고하며 민족의식을 일깨우기도 하였는데 종내는 일제의 마수에 걸려 옥사를 하고 말았다.

역사투어를 하며 느낀 것이나 우리 독립지사들은 일경의 밀정을 피해 은둔, 도피생활을 많이 했던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궁핍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사한 우국지사도 있었다 하니 참으로 애달픈 심정 금할 수 없었다. 이외에 알게된 새로운 역사적 진실은 상해임정 외에 이곳 북경에도 따로 대조선공화국 임시정부가 조직돼 활동했다는 사실을 듣고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삼일운동 후 서울한성에 있던 항일조직, 상해임시정부 또 해외에서 활동하던 모든 독립단체가 모두 베이징의 동물원이 있는 창관루에서 회동을 거듭한 끝에 상해임시의정원 하나의 조직으로 통일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독립자금의 조달과 독립투쟁의 일원화에 있었으며 투쟁동력의 극대화 도모에 있었다고 한다. 당시 상해임정은 외교를 통한 독립투쟁노선을 견지했으며 북경에 조직돼있었던 임시정부는 결사항전하는 무력투쟁노선을 표방했다고 한다.

결국 상해임시정부 조직으로 일원화돼 만주에서 독립군투쟁을 펼치며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조국없는 베이징의 하늘아래서 숨져간 독립투쟁의 외로운 원혼들, 손꼽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우리자손들은 선조들을 떠올리며 이시점, 이곳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각오로 살아가야할까 깊은 고뇌에 빠지지않을 수 없었다. 투어중 심훈의 사가앞에서 일행을 대표해 심훈의 < 그날이 오면 >저항시를 낭독했다.

역사는 강한자의 것이다. 약소민족의 설움이 과연 무엇이고 어떠할까라는 생각도 문득 떠오른다.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큰 죄악이 아닌가. 종일 강행군투어에 심신은 지쳤으나 지피지기, 선열들께 마음에 빚을 조금은 갚은 느낌이었다.

오늘도 일본은 반성은커녕 한마디의 사죄도 없이 갖은 만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빚을 만분지 일이라도 되갚기 위해 우리는 지상의 과제인 국력배가를 위해 매진하여야 하겠다. 이길춘 울산바둑협회 고문·유석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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