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가을 청도는 붉다. 마을마다 감나무 가지가 담장 너머로 버드러져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감나무 밭이 잇달아 펼쳐진다. 가을이 깊어지면 청도군 매전면 장연사지로 향한다. 감나무 밭 한 가운데 동·서로 나란히 서 있는 삼층석탑의 안부가 궁금한 탓이다.

주인이 떠난 빈집을 지키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감을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 놓은 붉은 눈물’이라고 이재무 시인은 표현했다. 장연사터를 지키는 감나무는 수 십 그루다. 흥성흥성했던 시절은 간데없으니 탑을 향해 가지를 뻗어 그렁그렁한 붉은 눈물을 매달 수밖에 없다. 올해는 그마저도 놓치고 말았다. 부지런한 주인은 일찍 수확을 해 버렸다. 가지는 휑하고 아직 떨치지 못한 잎만 가득하다. 한 시절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 보려 했는데 그것도 욕심이었나 보다.

동네 사람들은 장연사를 ‘망한 절’이라고 부른다. 절터의 규모로 보나 금당 앞에 우뚝했을 쌍탑을 보더라도 큰 절이었을 것이다. ‘절에서 쌀을 씻은 쌀뜨물이 앞 개천을 따라 멀리 30리 밖에 있는 강까지 뿌옇게 흘러갔다 카더라.’ 이 ‘카더라’는 가끔 설화가 아닌 역사로 기록되기도 한다.

▲ 청도 장연사지 삼층석탑.

통일신라를 거쳐 불교를 숭상한 고려시대에 절은 번창하였다. 깊은 골짜기 쌍탑가람으로 스님들이 장삼을 떨치며 드나들고, 탑돌이를 하기위해 몰려오는 사람들로 사시사철 활기가 넘쳤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마을 이곳저곳에 석조물들이 남아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배례석, 부러진 당간지주, 물을 담았던 석조와 마모가 심한 석불도 있다. 사라진 연유도 모른 채 흔적만 남은 절터에는 보물 제 677호 장연사지 삼층석탑 두 기가 어연번듯하게 서 있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탓에 장싯골과 인근의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배경이 되어 준다.

절터를 나오다 돌아보니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청도 반시 한 개가 감나무 끝에 남아있다. 눈물 한 방울 붉디붉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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