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주은 전 울산과학대 교수·국문학

36년 일제강점기는 우리 문화에 큰 상처를 남겼다. 우리 말과 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미쳤다. 이 분야 연구자 중 고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을 옮겨보고자 한다. 고인께서는 아동문학가이자 우리글과 말에 애정이 크셨던 분이다. 그의 <우리글 바로 쓰기> 1권에 나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일부 옮겨보고자 한다.

수순(手順)은 순서, 과정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중간평가 정지 작업 수순 밟기’에서 수순은 차례, 절차를 의미하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신병(身柄)은 몸, 사람, 일신, 신상, 신분의 의미를 가진다. ‘농민 시위 14명 신병 확보 조사’ 신병 대신에 ‘신분’이라는 용어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장(立場), 이 단어는 한글학회에서도 일본말이니 쓰지 말자고 하였으나 이제는 너무 많이 쓰는 말이 되어 있다. 이외에도 본격적으로 몇 단어를 열거해 보도록 한다.

축제(祝祭)는 일본말이다. 우리의 제사는 조용하고 엄숙하다. 그래서 제(祭) 앞에 축(祝)을 붙일 수 없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의 제사는 시끄럽게 떠드는 행사로 치른다. 우리말 ‘잔치’를 살려서 예술제(예술 잔치), 문화제(문화 잔치)로 표현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납득(納得)은 일본말 사전에는 사람이 바라고 비는 바를 신불이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서기 1180년대부터 쓴 것으로 일본 문헌에 나와 있다. ‘정치 공작을 몰랐다는 건 납득이 안가’에서 ‘납득’은 ‘곧이 안 들려’ ‘곧이 들을 수 없어’ ‘알 수 없어’로 표현하여야 한다.

하치장(荷置場)도 일본 말이다. ‘쓰레기 하치장이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에서 ‘하치장’을 ‘버리는 곳’ ‘쌓아두는 곳’으로 표현하여야 한다. 하물, 수하물 모두 일본말이다.

우리가 평소 자주 사용하는 상담(相談)도 서기 1370년 일본 고전 <테평기>에 수록된 말이다.

이외에도 견출, 수취인, 입구 등도 일본말이다. 이렇게 1880년대 이후 일본어에서 우리 말에 들어 온 어휘를 조사하여 편집한 <일본에서 온 우리말 사전>(이한섭)이 2014년 10월에 발간되었다. 이 사전의 어휘는 1868년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일본에서 쓰이던 말, 1868년 이후 일본에서 새로 만들어진 말들을 수록하였는데 이 사전에 수록된 어휘가 3634개나 된다. 윤주은 전 울산과학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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