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에 맞춰 비용산정·저가경쟁
계약 후 추가 비용 보전도 외면
공공시설물 품질 저하로 이어져

▲ 신명준 울산시 건설협회 운영위원

기해년 한해도 거의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한해의 계획을 세워 야심차게 해보려 했지만 결국 작년과 별반 다름이 없다. 멀어져 가는 세월을 잡을 수가 없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가는 세월 잡을 수가 없다지만 못 다한 일들은 계속 쌓여만 가서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런 마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과 들은 온갖 형형색색으로 수놓아졌다.

단풍을 보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에 새삼 감탄한다. 단풍잎이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해 잎에 영양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단풍잎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세상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낱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건설산업의 현실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건설업계는 건설산업의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해오고 있다. 그 요구조건 속에 그래도 가뭄에 단비같이 규제가 풀린 것이 적격·종심제 입찰에서 낙찰예정자로 선정된 뒤 서류심사를 포기해도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종심제는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수백개의 업체가 참여하는 적격심사 입찰에서는 낙찰예정자로 선정된 후 실행이 나오지 않아도 부정당업자 제재가 두려워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정부규제입증책임제를 통해 규제완화 대상으로 선정돼 지난 5월 입법예고된 사항들이 이번 9월에 최종 확정됐다. 이번 개정안은 발주자에게 적정한 예산을 편성해 공사를 발주해야 한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개정전에는 건설공사 낙찰이 되더라도 공사비가 현장 실행에 못미쳐 건설사의 자금을 투입해야만이 공사를 완공할 수 있는 공사낙찰금액이더라도 건설사는 공사포기를 할 수가 없었다. 낙찰예정자로 선정된 후 정당한 사유없이 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면 부정당업체로 지정되어 일정기간 동안 공사입찰에 참여를 할 수 없으며 공사투찰을 하기 위한 입찰보증금 또한 발주처에 지급해야 하는 이중고에 건설사는 어쩔수 없이 낙찰된 이후에는 공사 수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다면 건설사는 왜 남지도 않은 공사에 투찰을 하여 피해를 자초하는가? 또 공사내역을 면밀히 검토해 공사금액이 적정한 입찰에만 투찰을 하면 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공사를 발주를 하려면 예산편성, 설계, 내역산정, 검토 등 많은 시간과 전문인력이 투입돼 발주에 이른다. 이런 과정들은 최소 몇 개월에서 몇 년이 소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방대한 설계도서와 내역서를 파악하는 시간은 불과 입찰공고 후 한달 이내다. 더욱 중요한 것은 1년에 한건도 낙찰이 되지 않는 건설사가 작년의 경우 30%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찰을 위한 설계도서와 내역서 검토를 위해 전문인력을 보유한다는 것은 건설사로서는 요원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근심, 걱정을 건설사만 하고 있을까. 지금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불만이 가득하다.

오죽하면 요즘같은 건설 불경기에 낙찰예정자로 선정된 후 낙찰을 포기해도 된다는 법까지 제정했을까. 그동안 건설업계에는 관급공사는 이윤 확보는 고사하고 적자만 면하면 된다는 인식이 만연했다.

오랫동안 발주기관들은 공사발주 전 단계에서 적정한 공사비 산정보다 예산에 맞춘 공사비 산정과 저가 경쟁을 유도했다. 또 계약체결 후에도 부실설계 수정·보안 및 설계변경, 공기연장, 간접비 등에 따른 추가비용 보전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건설현장의 현실이다.

이는 공사비 부족으로 인한 공공시설물의 품질 저하를 초래한다. 또 안전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결국 모든 부담은 국민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공시설물의 우수한 품질을 위해 발주처는 적정한 대가를 지급하고 건설인들도 정해진 책임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신명준 울산시 건설협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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