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형제 울산대학교 교수

올해 11월 울산에서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울산지역 노사가 함께 모여 공부하게 된 것이다. 울산의 노사를 대표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경총과 상공회의소. 이렇게 4개 단체 소속 교육생 21명이 울산대학교 5호관에 11월 첫 주부터 매주 한 번씩 모여 ‘4차 산업혁명과 노사관계의 발전’이라는 주제로 전문가들의 교육을 받고 함께 토론했다. 노사가 같은 곳에 모여 함께 공부한 것은 울산 역사상 최초의 일이 아닌가 싶다. 교육생들은 분주한 업무 중에도 4주간 교육에 거의 개근을 했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재충전하는 기회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 교육인 지난 22일에는 수료식과 함께 노사정 대표들의 좌담회가 열렸다.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울산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노사가 함께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차분하지만, 때로는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교육생들은 처음에는 자신이 속한 대표가 발언할 때만 박수를 쳤지만, 공감하는 의견이 나올 때면 함께 박수를 치기도 했다.

노동운동의 맏형 격인 한국노총 울산본부장은 노사는 이해가 다르지만 같이 해야 할 때도 있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고정관념을 깨고 서로 인내력을 발휘하며 만나자고 했다. 강성 대기업 노조를 대표하는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4차 산업혁명이 노조에게 일방적 양보를 강요한다는 점에 의구심을 표현하면서도, 지역 차원의 양극화 해소와 원하청 구조개선을 위해 최소한의 선결조건이 충족된다면 노사정 대화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경영진을 대표하는 울산양산 경총의 상근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하는 수요 감소, 서비스화 추세 등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지역 고용문제 등에 자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사 간의 공식·비공식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호소했다. 지역 노사 대표의 이 같은 의사 표현에 대해 울산시의 일자리경제국장은 그동안 노사정을 대표하는 기구가 형식적으로 운영된 점을 인정하면서, 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이 필요한 만큼 쉬운 의제부터 다양한 차원의 대화를 추진해 가자고 제안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던 필자로서는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 먼저 든 생각은 노사 공동 교육과 대화의 기회가 왜 이제서야 마련된 걸까 하는 반성과 안타까움이었다. 이런 노력이 3, 4년만 더 일찍 진행됐더라도 지역 산업의 위기 대응이 조금이나마 더 신속하고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제부터라도 노사가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지속해 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음으로는 노사가 제안한 의견의 공통점에 대한 좀 더 신중한 수용과 전문적 실행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노동정책이나 재벌 대기업 등의 문제는 지역 차원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앙과 지역이 밀접히 연관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 차원에서 노사 대화가 가능해지는 최소한의 전제조건과 의제가 무엇인지 파악된다면, 지역 노사정 대화의 실질적 진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의 노사정 대화는 한 교육생의 돌출 발언에 의해 의미심장하게 마무리됐다. 지역 대학을 갓 졸업한 한 교육생은 “나는 26세의 젊은 직장인이다. 아버지는 대기업 하청회사 임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하셨는데,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졸업한 친구들의 취업률은 절반도 안된다. 나는 다행히 취업을 하긴 했지만 계약직으로 최저 임금보다 조금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 기성 세대는 자신의 권익만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 세대의 실정을 좀더 고려해 줬으면 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젊은이의 발언 앞에 우리 모두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원하청 문제와 젊은 세대의 일자리 문제를 감안할 때 지역의 노사는 기득권 세력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노사정 대화와 협력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조형제 울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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