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교 공사’ 기업가 정신 표본
큰 손해 감수로 더 큰 신용 창출
인지혁명시대 무형자산 더 중요

▲ 서재곤 대형타이어유류(주) 대표이사

이 땅에서, 지난 100년 동안, 기업가 정신의 표본을 꼽으라면 현대건설의 고령교(高靈橋) 복구공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 중 미군에서 발주한 공사를 수주하여 건설업의 기반을 닦은 현대건설은 1953년 4월 고령교 복구공사를 맡게 됐다. 대구와 거창을 잇는 이 다리는 지리산 공비토벌을 위해 복구가 시급했다. 계약금액만도 5478만환으로, 당시 정부 발주 공사로는 최대 규모였다.

1955년 5월 현대건설은 2년여 악전고투 끝에 계약 공기보다 2개월 늦게 고령교를 완공했다. 공사에 들어간 총공사비는 계약 금액보다 약 1000여만환 더 많은 6500만환으로, 결국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엄청난 적자를 본 것이다. 장비도 턱없이 부족하였으며 교각이 홍수에 쓸려가버리는 수난도 겪었다. 자재값과 노임은 공사기간 동안 120배나 인상됐다. 고 정주영 회장은 이러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공사를 마무리 지은 것은 ‘신용’ 때문이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고령교 공사는 비록 큰 손실을 안겨주었지만 커다란 신용을 창출하면서 한강인도교 수주로 이어졌고, 현대건설이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적인 건설회사로 자리잡는 밑거름이 됐다. 오늘날 ‘현대’라는 이름의 모든 회사들이 그 신용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76년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언문인 <국부론>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인 인간의 욕구는 공동체 부의 기반이다’라고 했다. 사업주는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리는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면 그 남는 돈으로 직원을 더 많이 고용해 이윤을 더욱 늘리려 한다. 따라서 민간 기업의 수익증대는 공동체의 부와 번영을 늘리는 기초가 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신용은 더 큰 신용을 만들어내고, 큰 신용은 빠른 성장을 이룩하며, 빠른 성장은 또 다른 신뢰를 양산하는 사이클이 형성되어 지속적으로 부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사실상 탐욕이 선한 것이며, 이기주의가 곧 이타주의라고 주장함으로써 더 많은 이윤을 생산에 재투자하는 현대 자본주의 윤리를 등장시켰다.

오늘날 기업인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신용’이 어느 날 갑자기 현생인류에게서 생긴 것이 아니다. 7만년 전 먹을 것을 찾아 아프리카를 떠난 우리 조상들이 이동 중에 만난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대규모 협력으로 그들을 물리쳤다. 그들의 협력은 두개골의 크기를 극복했고 근육의 크기를 이겨냈으며 신용이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오늘날 화석 속에서 발견되는 거대동물들이 현생인류의 이동 경로마다 멸종되고 말았는데, 이를 두고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지혁명이 가져온 결과’라고 했다. 인지혁명은 보이지 않는 허구를 믿고 협력하는 능력으로, 아프리카에서 이동하기 시작한 7만년 전과 3만년 전 사이에서 뇌의 배선이 바뀌면서 돌연변이로 생겨났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신용을 사이에 두고 서로 협력하는 동물인 현생인류는 더 미친듯이 신용을 쌓아간다. 그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말이다. 오늘날의 거대 기업들 페이스북, 아마존, 에어비엔비 등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업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보이는 것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업이 촌스러워지고, 보이는 인공물이 보이지 않는 것에 비해 보잘 것 없어지고 말았다.

현대건설은 1960년대 중반 태국 파타니와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이 공사 역시 큰 적자를 봤지만 그 후 현대건설이 국제 건설시장에서 큰 신용을 얻었다. 기업인들은 각자 다른 제품들을 생산한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신용이란 무형의 자산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무형의 자산을 생산하는 일, 이 일은 바로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이동하기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 일의 본질은 아무리 시간이 가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서재곤 대형타이어유류(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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