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3)
신화처럼 신비로운 아크로폴리스
섬세하면서도 균형잡힌 파르테논
우아함으로 매력 더한 에렉테이온
찬란한 문명 못따라가는 현대도시

▲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구릉 위에 우뚝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잘 잡히고 세부적으로는 섬세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어 그리스 건축의 으뜸으로 꼽힌다.

고대 그리스의 영광.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길은 그리스 신화처럼 신비롭다. 아테네에 아크로폴리스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15세기의 일이다. 하지만 창건당시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여러 우여곡절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결정적인 파괴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루어졌다. 기원전 480년에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은 도시를 약탈하고 신전을 불태웠다. 아테네는 연합군을 이끌고 페르시아와 싸워 승리한 후, 맨 먼저 신전을 재건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아테네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동맹국으로부터 모금한 기금을 아크로폴리스 재건에 투입했다. 페르시아에게 당한 전쟁피해를 복구한다는 명분이었다. 숨겨진 의도도 있었다. 그 사업을 통해 아테네 시민들에게 일자리와 돈을 제공하려했다. 재건된 파르테논에는 아테네를 수호하는 아테나 여신을 봉안했고, 엄청난 보물을 수장하는 보물창고도 두었다.

아크로폴리스의 재건은 지중해 세계의 새로운 패자로서 승전을 기념하는 사업이었다. 대문채격인 프로필레아부터 승전의 기념관 성격을 갖는다. 페르시아 전쟁과 관련한 도서를 수장하는 도서관, 관련된 회화를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프로필레아를 나서면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정상이 넓게 전개된다. 항공모함의 갑판처럼 비교적 평평한 땅에 함교처럼 거대한 신전이 서 있다. 왼쪽에는 파르테논, 오른쪽에는 에렉테이온, 중간부는 비워두었다. 진입부와 축도 다르고 한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건물이 입체적으로 나타난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전은 ‘신이 거주하는 집’이었다. 내부에는 신탁을 받는 사제들만 출입할 뿐 일반신자들은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내부공간보다는 건물의 외형을 중요시했던 배경이다. 그들의 신은 인간과 다른 세계에 사는 거룩한 존재가 아니었다. 죽지 않을 뿐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까탈스럽고 욕심 많은 존재였다.

그들은 인간이 사는 집을 더 크고, 장중하게 만드는 것으로 신전을 디자인 했다. 초기의 신전들은 사방을 두꺼운 벽으로 막고 작은 입구를 둔 창고형 건물이었다. 입구 앞에 기둥을 세워 현관(portico)을 만들면서 위엄을 갖추어갔다. 기둥은 신성함을 표현할 수 있는 오래된 방식이었다. 기둥을 많이 세울수록 아름다움과 장중함을 더 강조할 수 있었다. 건물크기에 맞춰 기둥의 굵기와 높이를 정하는 방식, 그리고 기둥머리를 장식하는 여러 형식들이 개발되었다.

파르테논의 기둥형식은 도리아식이다. 주춧돌이 없고 기둥머리 장식이 단순하다. 기둥머리가 찜질방 양머리 수건처럼 둥글게 말린 이오니아식에 비해서는 우람한 남성미를 갖는 형식이다. 남성적이라고 해서 근육질만 갖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잘 잡히고 세부적으로는 섬세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대리석을 떡 주무르듯이 다듬어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표현하는 그리스인들의 조각술이 담겨있었다. 영국인들이 떼어다 대영박물관에 모셔다 놓고 아무리 돌려 달라 사정해도 모르는 체 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지금은 삼각형 박공면(pediment)조차 날아가 버리고 없으니 그 화려함을 연상하기조차 어렵다.

아크로폴리스에서 파르테논 보다 더 매력적인 건물은 단연 에렉테이온(Erechtheion)이다. 이곳은 아테나 여신뿐만 아니라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헌정된 신전이다. 파르테논보다는 약간 늦게 건축되었지만 거의 동시대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건물의 건축적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파르테논이 건장한 남성미를 뽐낸다면 에렉테이온은 우아한 여성미를 풍긴다.

이건물에 이오니아식 기둥을 사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에렉테이온은 사방이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동쪽 면은 기둥으로만 구성된 파르테논 형식이지만 북쪽 면은 벽식 구조를 갖는다. 밋밋한 벽면의 단조로움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여상주(女像柱)를 갖는 발코니이다. 발코니의 기둥을 여인상으로 조각한 것이다. 걸어 나올듯한 역동적 자세와 주름진 옷자락에 비치는 여체의 아름다움. 근엄하기 짝이 없는 파르테논과 얼마나 다른가. 여인상으로 하중을 지탱하다보니 허약한 목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뒷머리를 이용한 재치가 놀랍다. 담백한 벽면이 배경이 되어 여인상 조각품이 도드라져 보인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그리스 건축의 양식적 기원은 지역이나 민족의 다양성에 근거한다. 도리아식이나 코린트식, 이오니아식 등에서 보듯 바로 그 양식이 시작되었던 지역이나 종족의 이름이다. 그리스 건축의 위대함은 에게해를 둘러싼 대륙들과 수많은 도서 국가들에서 발원한 다양한 문화적 유전인자가 헬레네스(hellenes)라는 용광로 안에서 융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이후 그리스 문명의 급격한 몰락은 바로 그 개성과 융합의 부재에 기인된 것이 아닐까. 전쟁 이후 스파르타도 마케도니아도 그리스 문명을 아테네 수준 이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프로필레아 문틈으로 아테네 현대도시와 멀리 에게해의 풍경이 담긴다. 2500년 전의 아테네 문명과 비교하면 허름하기 짝이 없다.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던 그리스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역사는 결코 스스로 진보하거나 퇴보하지 않는 법. 위대한 그리스인의 선조들은 냉엄한 역사의 법칙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못했을까, 아니면 후손들이 게으르고 못 배운 탓일까.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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