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예절로 대하고
부당이익 얻기 위해 실례하지 말아야
페어플레이 의식화돼야 불공정 줄 것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백화점 주차장 계산대에서 출차 순서를 기다리던 차의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놓쳐 앞 차 뒷범퍼를 살짝 부딪쳤을 뿐임에도 앞 차 운전자가 범퍼 수리비(몇만원에 불과할 것이다) 외에도 목을 다쳤다면서 치료비를 과다하게 요구하거나, 시내 4차선 대로의 3차선상을 신호에 따라 진행하는 승용차의 조수석 뒤 펜더부분을 갑자기 좁은 이면도로에서 유턴할 요량으로 직각으로 튀어나온 차량이 부딪치고도 쌍방과실이라 주장한다면 그 요구나 주장의 불공정함에 화가 날 것이다.

실제 필자가 겪은 일이지만 전자의 경우 앞 차의 과도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 직원이 응대한 결과 범퍼 수리비(사실 수리 필요성도 애매하다) 외에는 치료비를 배상하여 주지 않았고, 반대로 후자의 경우에는 갑자기 튀어나온 가해 차량의 운전자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부득이 수리비를 받기 위해 가해 차량 운전자를 상대로 소액심판 청구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중이다. 피해 정도나 누구의 잘못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음에도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은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페어플레이는 힘, 위협, 반칙, 편견, 새치기, 실례 등으로 부당하고 구차한 이득을 추구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기만을 통해 구차한 이익을 얻고자 하거나 남에게 실례를 범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며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경우 비상식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페어플레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대학 입학을 위하여 스펙을 위조한 일로 기소된 모 장관 부인이나 기업 오너라는 이유로 직원들을 하인 부리듯이 다룬 모 재벌항공사 일가에 대하여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는 범죄이기에 앞서 행위의 불공정성 때문이다.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페어플레이가 아닌 불공정한 일들이 행해진다.

초등학교 시절 6학년 한반 전체 학생이 실과시간에 운동장 가장자리 둔덕의 흙을 파내어 운동장을 넓히는 작업을 하는데 곧 있을 교외 웅변대회에 나갈 학생이 선생님으로부터 작업을 면제받고 혼자 교실에서 웅변연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 반장이던 필자가 몇몇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에게 불공평하다고 따졌다가 야단맞은 오래된 기억이 있다. 삽과 곡괭이로 흙을 파내는 작업은 힘들지만 정규 수업의 일환이므로 학생 모두가 공평하게 참가하여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물론 웅변 연습을 열심히 하여 입상함으로써 학교의 명예를 높일 수도 있으므로 작업을 면제해 줄 수 있다는 선생님의 깊은 뜻이 있었겠지만, 불공정과 페어플레이 등에 대한 담론이 있지 않던 시절에도 어린이들 마음속에 공정에 대한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관계되면 불공정한 주장과 행동을 쉽게 하는 것은 이기심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나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에서는 정을 주고 받으면서 친절한 데 반하여 모르는 사람이나 자신의 이익과 배치되면 무례한 행동을 하는 좋지 못한 예절 문화가 근저에 도사리고 있다. 사소한 일상사부터 직장, 사회, 정치 영역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불공정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은 결국 불공정의 악순환이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결과다. 상대가 예절바르게 대우해 주면 무시하고 짓밟기도 하는 간사한 사람들조차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모르는 사람이나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도 객관적인 예절로 대하고, 부당하거나 구차한 이익을 얻기 위해 남에게 실례하지 않는 것이 페어플레이의 출발점이다. 일상 생활에서나 교통 예절 등의 기초에서부터 페어플레이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지고 의식화되어야 불공정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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