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옥 무거중 교사

“선생님, 여고 45회 강대옥입니다”하고 인사를 드렸다. 교육공무원 연수의 쉬는 시간, 아는 얼굴이 있나 싶어 두리번거리다 고등학교 은사님을 뵙게 되었다.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장면들이 휘리릭 지나갔다. 야간자율학습 빠지려고 배가 아프다는 거짓말도 했었고, 시인이 느낀 슬픔에 대해 말씀 하실 때는 ‘이런 시를 배우는 게 더 큰 슬픔이야’라며 툴툴거리기도 했었다.

“그래, 대옥이구나. 그 때 아이들은 다 알아서들 잘해서 선생님이 해줄게 없었다. 좋아 보여서 참 좋구나.”하고 말씀하셨다. 시집가서 엄마가 되었고, 중학교에서 근무도 잘하고 있다는 말을 두서없이 하고 나니, 다음 연수가 시작되어 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급히 돌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참 모가 난 아이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게 싫었고, 그래서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을 믿지 않았고, 학교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 어긴 것을 들키지 않는 것이 똑똑한 처신이라고 생각했다. 가시가 돋은 고슴도치 같은 학생이었다. 그런데도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께서는 크게 혼내신 적이 없었다. 오히려 수포자인 나에게 국어에 재능이 있다고 말해주셨고, 보충수업 교재를 슬쩍 주셨고, 대학 입학금을 마련할 수 있게 장학금을 연결해 주셨다. ‘아침에 미역국을 못 먹어, 저녁에는 집에 가서 미역국 끓여 먹어야겠으니 야간자율학습을 빼 달라’고 했을 때도 ‘그래, 생일선물로 치자’라고 하셨다. 그러니 선생님들께서는 참 많이 봐주시고, 많이 도와주시고, 많이 쓰다듬어주셨다.

교사가 되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 ‘나’와 같은 학생들이 한 반에 꼭 몇 명씩 있었다. 매사에 불만이고, 쉽게 짜증내고, 선생님이 자기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슴도치 같은 아이들 말이다. 어려웠고, 아이들을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화를 내며 싸워서 가시 하나하나를 꺾고, 엄격한 규칙의 잣대로 가시를 솎아 냈다. 의욕적으로 달라붙어 닦달했고 환경미화, 기말고사 1등반이 되고는 능력 있는 교사가 된 것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만났다. 첫 환경미화 준비 날, “선생님도 같이 드세요”하며 과자봉지 입구를 내 쪽으로 돌려 밀어주는 아이들을 만나고,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나는 열심히, 잘 못된 길을 가고 있었구나’ 아이들은 저마다 ‘결’이 있었고, 나는 그걸 못 봤었다. 아이의 타고난 ‘결’과 반대쪽으로 쓰다듬으면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어도 털은 삐죽삐죽 서고 만다. 아이의 마음결이 나쁜 것이 아니라, 방향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고슴도치 같이 날카로운 가시도 결을 따라 쓰다듬으면 곱게 누그러들며 반질반질 윤을 내기 마련이다. 내가 만난 많은 선생님들이 하신 것처럼.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라고 시작하는 문자가 왔다. 올 초 전학을 간, 나에게 과자 한 봉지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던 학생이다. 티 없는 눈으로 믿음을 보여준 아이들. 그 아이들의 결을 보게 되면서 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늘어났다. 그러니 아이들이 내게 선생님들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나의 여러 실수들을 봐주고, 도와주고, 심지어 쓰다듬어 준다. 그러니 12월을 맞아 나를 키운 선생님들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선생님, 저의 결을 알아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강대옥 무거중 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