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에 잠자지 않던 옛 풍습과 달리
현대인은 연말연시 숙면·휴식 필요
멈춰 서서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2019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다가오는 새해를 경건하게 맞이하는 송구영신을 생각할 때이다. 예전에는 섣달그믐날이 되면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묵은 일들을 처리하는 한편, 밤에는 불을 환하게 밝혀놓는 풍습이 있었다.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여 아이들도 잠자지 못하도록 했다.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이 들면 눈썹에 밀가루를 발라 하얗게 만드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제야에 잠을 자지 않는 풍습은 도교에서 유래한 삼시충이라는 벌레와 관련이 있다. 사람 뱃속에는 죽음을 앞당기는 세 마리 벌레가 있다고 한다. 이 삼시충은 사람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욕심을 내게 하며 죄를 짓도록 충동질한다. 삼시충은 사람이 죽어야 제삿밥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에 섣달 그믐날 잠든 틈에 몸에서 빠져나가 상제에게 사람의 죄를 고해바친다. 상제는 죄에 따라 수명을 줄인다. 그래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늙게 되는 것이고, 더 이상 깎을 수명이 없어지면 죽음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깨어 있으면 삼시충이 상제에게 가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옛사람들은 늙음과 죽음을 인과응보, 그러니까 살면서 지은 죄의 결과라고 보았다. 그래서 장생불사하려면 근본적으로는 몸 안에서 삼시충을 몰아내고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만일 피치 못해 잘못을 범했다면 적어도 섣달그믐날 밤만은 삼시충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깨어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젊음이 선행이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듯, 늙음 역시 악행이나 게으름에 대한 징벌은 아니다. 사람의 생로병사는 순환하는 자연적 섭리의 한 부분일 뿐이다. 아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다가 늙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달라진 것은 삶의 의미나 세월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감각이다.

어두운 밤에 당연하게 잠을 잤던 선조들은 일 년 중의 딱 하루, 섣달그믐날 밤만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하룻밤만큼은 지난 한 해 동안 자기가 범한 잘못을 반성하고 새해에는 죄를 짓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잠을 몰아내야 할 벌레처럼 여긴다. 잠은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에 가급적 줄여야하는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청소년들조차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행복도가 세계 꼴찌라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밤은 불야성을 이루면서 수면을 죄악시하고, 노동과 학습 또는 교제와 유흥을 위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며 무한한 우주적 시간의 한 순간 동안 이 세상에 머물다 갈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달리고 또 달린다. 쉼 없는 경쟁과 자기개발,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모두가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아무리 준비하고 노력해도 아쉬움과 후회가 없을 수 없다. 의도치 않은 잘못을 범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불행이 찾아오기도 한다. 안타까운 이별을 겪는가 하면, 인생의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가 한 것에 비해 과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행운이 저주가 되고 불운이 기회로 바뀌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우화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옛사람들과는 반대로, 현대인은 해가 바뀌는 연말연시에는 좀 멈추어 서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숙면을 취할 필요가 있겠다. 섣달그믐에는 잠시라도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혀있는 온갖 네트워크를 떠나 자기 내면의 삼시충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어리석은 잘못을 피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꿈을 꾸고 뜻을 품지 않는 사람은 실패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잠을 청하라. 잠자는 자만이 꿈꿀 수 있다.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미래에 대한 소망과 희망, 그 모든 것을 상제에게 맡기고, 깊고 편안한 잠을 청하는 섣달 그믐날은 어떠한가. 우리가 잠든 사이 삼시충이 빠져나가 상제에게 죄를 고해바친다 한들, 어차피 먹어야 할 한 살 나이가 아닌가!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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