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사회부 차장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피의사실공표죄 논란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논란을 유발한 당사자는 바로 피의사실공표죄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다. 울산지검은 피의사실공표죄와 관련해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을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면허증을 위조해 약사 행세를 한 남성을 구속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 기소 전 피의사실을 공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가짜 약사로 인한 추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공익 목적에서 자체 공보준칙에 따라 상부 승인을 받고 자료를 낸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울산지검은 논란이 일자 대검 검찰수사심의위에 안건을 올려 수사 지속 결정을 받아냈다. 이후 울산지검은 피의사실공표죄에 저촉될 만한 발언은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발언만 반복하고 있다. 검찰의 강경 대응 이후 경찰은 물론 해경이나 선관위 등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된 기관들은 모두 수사상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유일한 예외는 바로 서울중앙지검이다. 청와대 하명수사와 관련해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된 이후 각종 수사 정보가 언론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 수사 주변인들이 밝히거나 흘리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조사내용이 언론에 실시간으로 유출됐다며 피의사실공표 문제를 지적하자 검찰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 제한된 범위 안에서 공보를 실시하고 있다”며 부인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검찰은 이달부터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한 법무부 훈령을 시행하고 있다. 훈령에 국민의 알 권리나 중요 사건일 경우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는 규정도 명시했다. 하지만 형법에 명시된 조문을, 훈령에 예외 규정을 두고 정당화하는 것은 법체계상 문제가 있다. 훈령 규정에 명시된 예외적 공개 사유 역시 포괄적이고 자의적이어서 현행 훈령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 공표죄에 대해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어떤 예외도 허용하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 피의사실공표는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와 참고인 진술을 공판 전에 노출시켜 법관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는 배심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제는 피의사실공표가 명백한 범죄행위지만 보이스 피싱이나 유사 수신 등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공익 차원의 예외적인 허용 또한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에 법률로 피의사실 공표의 절차와 방식, 공표 대상 피의 사실을 규정하거나 피의사실공표죄에 위법성 조각 사유를 신설하고 공개금지 규정 등으로 구체적인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수사공보법을 만들어 허용되는 수사 공보와 처벌 대상인 피의사실 공표를 명확히 구분하라는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고 추가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고, 선을 넘어설 경우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이춘봉 사회부 차장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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