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little prince-홍차作 : 굵직한 실타래의 한쪽 끝을 잡고 빠져나간 나의 왕자는 조금씩 실을 풀어나간다. 길어진 실의 길이만큼 작아진 실타래. 줄어든 실타래의 부피만큼 커진 빈공간에 어느날엔 보람이, 어느날엔 갈등이, 들어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배추가 김치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다섯번은 죽어야…고통속에 얻는 이름
생 김치라 하기도 익은 김치라 하기도
어정쩡한 때를 ‘김치가 미쳤다’ 표현해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중2’
부모가 “미치겠다”는 말 많이하는 때
사춘기·진학·취업처럼 경계에 섰을때
변화로 인한 혼란 두려워 말아야

김장김치 한 포기를 꺼낸다. 시원하게 삭아 새콤한 향이 퍼지니 침부터 고인다. 쑹덩쑹덩 썰까 결대로 찢을까 잠깐 고민한다. 갓 지은 밥을 보니 이파리부터 똬리처럼 감아 얹어 먹고 싶어진다. 대가리를 잘라내도 겹겹이 속을 품고 있는 모습이 가지런하다. 대중없이 찢어서 한입 가득 넣고 보니, 밥상머리에서 외면했던 김치가 맞나 싶다.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내고도 아쉬워 숟가락을 내려놓지 못한다.

김치는 막 담갔을 때도 맛있다. 배추에 버무린 양념이 채 스며들기 전, 마늘과 생강 냄새를 풍기며 아삭거리는 맛이 환상적이다. 그 후, 통 속에 담겨 서로 부대낀다. 고춧가루네, 액젓이네 하고 나뉘던 맛이 한데 뭉쳐 잘 익으면 찌개로 찜으로 들어가는 냄비마다 환영받게 된다. 이 두 가지 맛 사이 어디쯤 영 맛이 없을 때가 있다. 생 김치라하기도 익은 김치라하기도 어정쩡한 그때를 두고 ‘김치가 미쳤다’고 한단다.

김치가 미치다니! 과한 표현인 듯해도 명쾌하다. 그도 그럴 것이, 배추가 ‘김치’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다섯 번을 죽어야 한다지 않는가. 밭에서 뽑힐 때 한 번, 칼집 낸 몸통이 반으로 쩍하고 갈라질 때 한 번. 소금에 절여지고 시뻘건 고춧가루에 버무려지면서도 죽고, 마지막으로 암흑 같은 통 속에 뉘어져 냉장고 속에서 묻힌 듯 죽는다고 한다.

대충 죽어서는 안 된다. 소금에 제대로 죽지 않으면 관 같은 통 속에서 나올 때 곰팡이를 덮어쓰거나 아삭함을 잃고 물러진다. 애통하여 사람들이 ‘꽃이 폈다’고 위로해주지만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할 꽃일 뿐이다. 배추 밑동이 맛이 들지 않고 허연 채로 남아있지 않으려면 타들어갈 것 같은 검붉은 양념도 겁 없이 품어야 한다. 희고 단단한 몸피에 처절하게 묻혀야 한다. 김치는 그 고통 속에 얻는 이름이다. 그러니 생김치에서 익은 김치로 가는 동안 미칠 만하다.

면서 미친다고 생각할 때는 대부분 정체성을 잃었을 때다. 우스갯소리지만, 우리나라는 ‘중2’가 나라를 지킨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만큼 이 시기의 아이들이 세상 무서울 것 없단 말이다.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의 혼란을 그렇게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조금 빠르거나 늦기는 해도 아이와 부모가 미치겠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하게 되는 때가 이맘때가 아닐까 싶다.

두 딸이 나라를 지키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서로가 말이 통하지 않아 가시 돋던 때도 있었다. 누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 했나. 내 뱃속으로 낳은 아이라도 미울 때가 많았다. 싱크대 앞에서 수세미를 들고 애꿎은 그릇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나중에 꼭 너 닮은 딸 낳아라. 그때 다시 얘기 하자”며 언젠가 나도 들어본 듯한 악담을 내뱉기도 했다. 누구나 비슷한 이유로 겪어 보았을, 그때는 전쟁이었지만 돌아보니 실랑이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한때 미치는 시기가 있는 김치 같다는 생각을 진작 했더라면 좋았겠다.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는 부모가 소금으로, 편하지 않는 친구관계가 고춧가루로, 버거운 학업이 컴컴한 통인 양 힘들게 했을 터였다. 제대로 익어보고자 애썼을 아이였다. 그저 지켜봐 주면 좋았을 것을 얼마나 익었나, 제대로 맛이 들긴 했나 쉴 새 없이 김치통 뚜껑 여닫듯 했다. 맛이 왜 이러냐고 대놓고 타박은 안 했는지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닐 때가 사춘기뿐이겠는가. 함민복 시인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지만 거기에는 미칠 법한 혼란도 함께 존재하는 것 같다. 엄마 품에서 내려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는 변화의 시기가 그렇다. 상급 학교로 진학해서 적응이 필요한 때,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신분이 바뀌는 때도 다르지 않다. 결혼을 해서 가정의 울타리를 새롭게 친 때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갈 때는 ‘오춘기’라는 설레는 이름을 붙여주지만 사람을 미치게 하긴 마찬가지다.

나이가 백세인생의 허리춤까지 차오르려 한다. 오춘기 겪을 일이 걱정이던 참에 김치 한 보시기 앞에 놓고 용기를 얻는다. 미치는 한때가 있어 이후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면 어떤 경계도 두려워할 것 없다. 훗날, 나는 배추 포기 사이사이에 끼워놓은 무까지 알싸하게 익힐 만큼 맛나게 익은 김치 같으리라.

밥풀을 긁어모은 숟가락 위에 남은 김치를 얹는다. 아삭한 소리까지 삼키고 나니 배가 포실하다. 양념 묻은 그릇 위로 쏟아지는 수돗물 소리가 경쾌하다.

▲ 장나원씨

■장나원씨는
·2018 문학예술 신인상
·울산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행복연구소 레아 대표
·감정코칭 전문강사

 

 

 

▲ 홍차(홍채인)씨

■홍차(홍채인)씨는
·2018년 울산문화예술회관 올해의작가
·2016년 울주문화예술회관 지원작가
·2015년 한국예술위원회 전문예술인 분야 작가
·2013년 모하스트디오 레지던시 울산지원작가
·개인전 18회, 아트페어 및 단체전 110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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