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울산을 택한 이유, 그리고 떠나는 이유

▲ 김용길 비피앤솔루션 연구소장이 자체 개발한 POB(Person On Board·승하선 출입관리) 시스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울산은 그간 자동차, 조선, 화학 등 3대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산업수도라는 명성을 쌓아왔다. 그러나 최근 이들 주력산업의 침체로 인해 대기업 생산공장 중심의 산업구조가 취약점을 드러내고,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체질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과제에 당면했다. 이에 울산시는 지난해부터 기술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기술강소기업 허브화 사업’을 추진했으며, 사업 첫해 54개의 강소기업들을 이전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울산 이전기업들은 기존 자동차와 화학 등 주력산업의 고도화를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울산이 주력하고 있는 3D프린팅 산업에 특화된 업체들로 다양하게 구성됐으며, 울산으로의 이전을 통해 사업의 새로운 도약기를 준비하고 있다. 반면, 울산 지역경제의 침체기를 버티지 못하고 울산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떠난 기업체들도 더러 있었다.

기술강소기업들이 울산으로의 이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며, 기존 중소기업들이 울산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 김재윤 디케이 3D프린터마케팅 팀장이 3D프린터로 제작한 자동차 부품을 설명하고 있다.

울산시 ‘기술강소기업 허브화’사업 첫 해 54개 업체 이전 성과
연구기관·필드테스트·후가공 등 우수한 3D프린팅산업 인프라
조선·자동차·화학단지 등 대규모 공장 위치 수요처 풍부 강점
지역업체 제품 외면·비싼 땅값·지자체 공장 설립 규제 걸림돌

◇인프라 발달한 울산이 3D프린팅 산업 최적지

울산 이전 강소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유독 3D프린팅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업체들의 비중이 많다. 특히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을 통해 울산으로 이전한 16개 기업 중 11개 기업이 3D프린팅 관련 기업들로 채워졌다. 이들 3D프린팅 기업들은 관련 소재기술이 뛰어난 연구기관과 필드 테스트, 후가공 등 우수한 3D프린팅 산업 인프라를 이유로 울산 이전을 결정했다고 입을 모았다.

(주)대건테크는 지난해 울산지사를 만든데 이어 오는 3월께는 울산에 새로운 독립법인 주식회사 디케이 설립을 준비하는 등 단계적으로 울산이전을 준비중이다.

▲ 대건테크 부산 본사에 위치한 금속 3D프린터 연구실에서 직원들이 3D프린터를 조작하고 있다.

창원에 본사를 둔 대건테크는 두산공작기계 등에 관련 장비를 납품하는 1차 밴드로, 지난 2015년 3D프린팅 관련 별도의 사업부서를 만들어 3D프린팅 산업을 회사의 새로운 주력 사업으로 육성중이다. 현재는 금속 3D프린팅 제조 및 판매와 출력품 납품 등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향후 울산에 양산형 공장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김재윤 대건테크 울산사무소장은 “현재 대건테크의 금속 3D프린팅 기술은 해외 기술력과 비교해도 80% 이상의 수준에 도달할 만큼 완성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기존 본사 소재지인 창원에서는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고 경남권에서는 울산과 부산 등에서 수요가 발생한다”며 “또한 한전과 생산기술연구원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3년 전부터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는 부품을 금속 3D프린팅으로 출력해 제품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중으로 테스트 베드가 가까운 울산 이전을 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 장현석 라오닉스 대표이사가 3D프린터로 제작한 자동차 부품을 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3D프린팅 관련 연구기관의 적극적인 지원

3D프린팅 기업 라오닉스는 부산에서 울산으로 본사를 이전한 케이스다.

라오닉스는 DLP 3D프린터(픽셀(Pixel) 단위로 빛을 발사해 층층이 경화시키는 방식)를 자체 개발해 시제품을 개발하고 양산화에 나서고 있다. 현재는 현대자동차 1차 밴드로 등록돼 있으며, 자동차 차체 외관 프레임을 용접할 때 사용하는 지그 등을 제작해 납품하고 있다.

라오닉스는 올해 울산에 설립되는 3D프린팅 벤처집적 지식산업센터의 입주를 목적으로 8개 업체가 신규 합작법인 ‘OMT’라는 컨소시엄을 구성, 울산시에 먼저 공동사업을 제안했다. OMT가 기존 제조업계와 3D프린팅 업계 간 연결고리를 제공해 3D프린팅, 기계가공, IoT기술, 장비, 소프트웨어 등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는 형태다.

장현석 라오닉스 대표는 “기존에 3D프린팅 산업을 부산에서 10년 가량 해봤지만, 관련 산업의 저변 확대가 안 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3D프린팅 업체들을 모아 실제 제조업 등에 서비스를 제공해야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의 복합소재 연구 및 개발, 울산테크노파크의 소재성능평가 표준화,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의 시제품제작 서비스 지원사업 등을 함께하기로 협약을 맺으면서 본사를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ICT, IoT 등 첨단기술 적용할 사업장 많아

부산에 본사를 둔 (주)비피앤솔루션은 지난해 5월 울산에 자회사 테크웍스를 설립했다. 비피앤솔루션은 시스템 통합 사업, ICT/IoT 솔루션 제공, 산업용 장비 및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체로, 현재는 대부분의 기술들이 조선사에 특화된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현재 주 고객사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으로 조선업 경기가 어려워졌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하는 지역은 본사가 있는 부산이 아닌 울산이다. 이에 기존에 납품한 장비들의 유지보수와 다양한 고객들의 요구사항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울산으로 이전하게 됐다.

김용길 비피앤솔루션 연구소장은 “울산의 경기가 예전보다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 비피앤솔루션이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들은 조선소 뿐만이 아니라 화학단지와 자동차 공장 등 대규모 인원이 투입되는 현장에 모두 적용 가능하다”며 “현장과의 격차를 줄이고, 향후 다양한 솔루션 제공을 통해 울산에서의 성장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높은 부지 매입비용, 적극적인 행정 아쉬워

기술강소기업들이 울산으로 이전하고 있는 가운데 높은 부지 매입비용과 지자체의 외면 속에 울산을 떠난 기업들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울산지역에 본사를 두고 플라스틱 포대를 생산하던 A사는 최근 지역에서 시장 확보가 어려워지자 지난해 본사를 서울로 이전했다.

또한 울주군 반천산단의 창호전문 B사와 LED 조명전문 업체 C사도 지역에서 기업활동이 난항을 겪자 각각 본사를 경남 양산과 경북 경주 등으로 이전을 검토중이다.

이들은 조달 우수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로, 울산지역 공공기관들이 지역업체에 대한 발주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울산지역 LED 등기구 총 발주액 가운데 지역업체 계약비율은 겨우 5% 가량에 불과했다.

알루미늄 시스템창호 우수제품 지정을 받은 C사도 울산지역 지역 총발주액 가운데 지역 수주비율이 2016년 2%, 2017년 4%, 2018년 8%에 불과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강제조항이 아니다는 이유와 지자체 등의 지침 우선주의 등으로 지역기업 제품에 대한 발주를 외면하고 있다. 이에 각 기업들마다 살길을 찾아 타지역으로 이전을 택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울산에 본사를 둔 자동차 부품업체 D사의 경우 자동화 장비를 갖춘 새로운 공장설립을 울산이 아닌 경주에 추진 예정이다. 주요 납품처가 울산임에도 불구하고 경주에 신규 공장을 설립하는 이유는 높은 부지 매입비용과 공장설립과 관련된 지자체의 규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D사 관계자는 “울산에 공장을 새로 짓기 위해 지자체 담당자를 만나보면 각종 조례와 규정 등을 이유로 시간만 지체되고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주에서 공장 설립을 위해 만나본 공무원들은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며 “경주에 공장을 설립하면 물류비용이 늘어나고 각종 부대비용이 늘어나겠지만, 전반적으로 따져보니 울산에 짓는거보다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글=이우사기자·사진=김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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