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생 선거권 행사에 대한 우려는
근시안적이며 헌법의 권리 침해
청소년을 동료시민으로 인정해야

▲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작년 말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다가오는 4월 총선부터 투표 연령이 만 18세 이상으로 바뀐 것이다. 이번 개정으로 새로 편입된 유권자는 약 50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 중 대략 6만 명 정도가 고등학생이라고 한다. 일부이긴 하지만 금년부터 고등학생도 주권자로서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개정을 바라보는 교육계의 시선은 복잡한 것 같다. 선거 때문에 학교 분위기가 들떠 입시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부터, 선거교육을 둘러싼 논란으로 그렇지 않아도 위축되고 있는 교사의 입지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염려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학교에서 선거운동이나 정치활동을 금지·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적 보편기준과 기본권 및 인권의 측면에서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고 선거교육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고3 학생들의 선거권 행사를 입시 혼란이나 학교 분위기의 혼선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이다. 보통선거권은 개인적 다양성이나 차이를 막론하고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며, 동료 시민으로서도 그들의 참정권을 동등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서구에서 탄생한 보통선거권은 신분적·계급적 특권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의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천명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성년 남성’에게만 주어졌던 투표권이 여성에게도 개방되면서 대의민주주의의 기초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일제의 식민지 상태에 놓여있던 우리 민족에게는 정치적 권리가 없었다. ‘천황의 신민’이라는 허울을 씌웠지만 한반도의 주민은 일본헌법의 적용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 1920년대 이후 친일파 양성을 목적으로 조선총독부는 극히 일부의 부자들에게 제한적인 참정의 기회를 부여했지만, 그것조차도 허울뿐인 참정권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보통선거권은 해방 뒤인 1948년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치러진 초대 선거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렇게 미국에 의해 ‘1인 1표제’라는 제도가 이식된 뒤, 그것을 뒤따르는 형태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 정치의식과 제도가 발전해온 셈이다. 이번 개정 역시 그런 발전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거연령 하향 문제는 성인들이 일부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허락’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가 법률을 개정하여 보통선거권의 범위를 확대한 사안이다. 이제 그들도 성인들과 동등하게 시민적 주체로서 참정권을 행사하게 된 것이며, 그것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기도 하다. 학교의 선거교육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에 앞서, 청소년들을 동료 시민으로서 인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울산시교육청은 1월 1일자로 조직을 개편하면서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했다. 민주시민교육 및 학생자치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선거교육도 민주적 가치의 내면화, 민주적 자치의 일상화를 추구하는 민주시민교육의 맥락에서 대비해 갈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학생들을 정책의 수동적인 적용대상으로 보는데서 벗어나 정치적 참여 주체로 대우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조직개편으로 보인다.

학교에서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선거교육이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를 정치와는 무관한 절대적 순수지대로 남겨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장 선거교육의 내용을 둘러싸고도 이견과 충돌이 있다. 다행히 학교는 현실의 갈등과 다양한 주장을 교육하고 토론하는 장이다. 특히 미래지향적 교육은 이질적인 집단이나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갈등의 관리와 해결,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선거법 개정을 계기로 학교와 더불어 일반 시민들도 참정권의 의미와 시민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주체적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선거교육이나 정치교육이 청소년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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