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웬 굴뚝? 앞서 가던 남자가 물음표를 휙 던진다. 지붕에 기와를 얹은 모습이 창덕궁 낙선재 후원에 서 있는 굴뚝과 닮은 듯하다. 강화도 전등사에서 본 굴뚝과도 비슷하다. 3층 몸돌의 작은 감실에서 연기라도 퐁퐁 난다면 영락없다.

굴뚝과 엇비슷한 운흥동 오층전탑은 보물 제85호로 귀중한 유물이다. 그런데 보물찾기는 아주 어렵다. 안동 간고등어로 끼니를 해결하러 왔다가, 식당 주차장 한쪽에 키다리 아저씨 같이 우뚝한 탑과 곁에 나란히 있는 당간지주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안동역 역사 옆의 한 구석에 버려진 듯 서 있어 근처에 와서도 한참을 더듬어야 한다.

통일신라 때 건립된 이 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흐름에서 비켜나 있다. 서라벌의 변방인 안동에는 석탑이 아닌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전탑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무렵 안동은 분명 새로운 문화를 이끄는 열린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운흥동 전탑은 임진왜란도 속수무책으로 겪었고 한국전쟁의 아픔도 온전하게 견뎌냈다. 지금도 기찻길 옆에서 진동과 소음을 묵묵히 이겨내고 있다. 여러 번의 보수로 원래의 모습은 바뀌고 이래저래 손상을 입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손이 닿는 곳에는 빈 곳이 없이 낙서가 빼곡하다. 날카로운 못이나 뾰쪽한 칼로 깊게 판 이름들이다. 지우지 못하는 유성펜으로 눌러 쓴 것도 보인다. 거의 한자이름이고 중간 중간 한글이름도 있다. 영어와 일본어도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와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에 새긴 이름도 있다. ‘1958년 007 연애작전’은 왜 하필 탑이었을까. 1987년에 남긴 낙서를 보니 그 무지가 애달프다. ‘류○선, 소원성취’ 그 여자는 소원이 성취되었을까. 그 많은 사연들을 품어 주느라 힘이 들었을 탑을 두 팔을 벌려 마음을 다해 껴안아 본다.

고립무원의 오층전탑 곁에 서 본다. 나도 완전한 고립이다. 배혜숙 수필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