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주민자치센터는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주민자치회를 두고 있다. 전국 2800여개 읍·면·동에 주민자치회가 조직돼 있다.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소외되는 이웃이 없도록 정보를 교류함으로써 주민들의 힘으로 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 주민자치회의 설립목적이다. 그 때문에 주민자치회의 밑바탕엔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봉사 정신이 깔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본래 목적과는 사뭇 다르게 공동체를 와해하는 갈등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누구나 학교’ 사업을 두고 시작된 울산시 중구 우정동 주민자치회의 갈등이 해를 넘겨 점차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위원들간의 반목으로 사퇴와 제명이 잇따르고 동장과의 갈등도 노골화하고 있다. 위원들 중 일부는 중구의회에 청원을 제기하고 행정감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같은 갈등의 장기화는 위원들간의 정치적 갈등에 그 원인이 있다. ‘누구나 학교’ 사업은 하나의 계기일 뿐 저변에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진 위원들간 또는 동장과 일부 위원 사이의 정치적 알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주민들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구성된 주민자치회가 정치색을 띠기 시작하면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각종 선거에서 주민자치위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이같은 부작용을 뻔히 알면서도 어느 누구도 쉽사리 개선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마침 2020년 국회의 1호 법안으로 ‘주민자치회법’ 제정안이 제출됐다. 자유한국당 이학재 의원이 대표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 바른미래당 정운천 의원 등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법안의 핵심은 주민자치위원을 주민 손으로 뽑게 하고 주민자치회가 스스로 재정을 집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시·군·구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최소화하도록 해 자율성을 대폭 강화했다.

과거 동사무소라 했던 주민자치센터(행정복지센터)는 지역 주민들의 행정업무와 민원업무를 처리하는 관공서다. 주민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 행정조직의 실핏줄이나 다름없다. 커뮤니티센터(Community Center)로 표기되는 영어에서 알 수 있듯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복합지원시설이다. 동사무소라는 이름에서 자치센터 또는 복지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주민자치회를 구성한 것도 단순히 민원서류를 발급하거나 시정을 전달하는 행정하부조직에서 탈피해서 공동체 활동의 구심체가 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주민센터와 주민자치회의 정상화를 위해 정치화를 막는 제도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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