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지이라고도 부르는 살구정은 살구나무가 정자를 이루고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옛날 한량들이 살터(살티)에서 시살 등을 향해 활을 쏘며 훈련을 하고 쉬어가는 곳에 많은 살구나무가 정자를 이루고 있었다 하여 마을이름을 살구정이라 부른다. 또 이 곳 사람들은 살구정 마을 앞 동남쪽 들판지명을 "꼬두박샘"이라 부르는데, 지금도 이 꼬두박샘 위쪽의 마을회관 남쪽에는 전주와 같은 긴 장대를 세워두고 돛대라고 부르며 매년 보름 전날 저녁이면 당제와 함께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올리고 있다.
오랜 옛날 이 곳에 꼬두박샘이라는 깊은 우물이 있어 마을사람들이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마을에 화적떼가 침입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재물을 약탈해가며 심지어 돌림병까지 돌아 많은 병자가 발생하는 등의 재난이 계속되던 때가 있었다. 마침 어떤 도인이 지나다가 지형을 살펴본 뒤에 살구정 마을은 큰 배의 중심부에 해당하고 소호고개는 배의 선수(船首)이며 배내고개는 배의 후미(後尾)인데, 배 중심부에 꼬두박샘을 뚫었기 때문에 재난이 계속된다고 했다. 그래서 샘을 메우고 그 자리에 돛대를 세워서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리고 이 사실을 후세에 전하면 재난이 없어진다고 했다. 이에 마을사람들이 우물을 메우고 돛대를 세운 뒤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고 그 후부터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다 한다. 그 때 이후로 살구정 마을은 바가지를 퍼서 먹는 샘을 식수로 사용했다. 그러나 혹 한 두 집 우물이 있었다 해도 배 밑창을 뚫는 셈인 까닭에 재난이 계속되고 집안이 망했으므로 그 다음 사람부터는 다시 우물을 메워 이후로 우물을 파는 집이 없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품에서 흙과 햇빛, 그리고 바람과 비의 도움으로 그 생명이 이어지며, 그 중에서도 물은 최후까지도 목숨을 부지시켜주는 귀중한 것이다. 땅속의 물은 지표에서 멀어질수록 깨끗하고 많은 광물질이 녹아 인체에 유익하다. 깊고 좋은 물 대신 샘물만 마셔야 한다 하여 살구정 사람들이 실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곳곳에 많은 지하수 갱이 부실한 관리로 엄청난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 하니, 혹여나 마을을 지나던 현자(賢者)가 이 나라 땅속 깊이 저장된 엄청난 규모의 심층수가 오염될 것을 염려해 함부로 깊은 우물을 파지 말라는 하늘의 뜻을 전한 것은 아닐까. 이를 마다 않고 순응하는 살구정 사람들이 참으로 지혜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