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선거연령이 18세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서울교육청과 선거관리위원회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선거모의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선관위는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쉽게 가라앉진 않을 것 같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여건조차 마련되지 않은 사회초년생들에게 투표권만 덜렁 부여한다는 것은 전장에 출전하는 병사를 빈손으로 내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지만 부모의 품을 떠나 개인이 자립하기 위해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식과 지혜를 습득해야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회초년생들이 정작 사회생활에 필요한 제반지식들을 온전히 익히지 못한 채 삶의 전선에 내몰리는 것처럼 선거연령의 하향조정도 우리 정부가 너무 준비없이 시행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비록 세계적인 현상이라 할지라도 참정권행사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참정권을 허용한다는 것은 무면허 운전자들에게도 운전을 허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 가장 어려운 환경에 직면해있다. 북핵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황이다. 미국과 북한, 중국과 일본에 포위된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을 만큼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는 상태다. 국내정치는 진보와 보수로 극렬하게 양분돼 있다. 과거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은 가속되고 있지만 현 정부에서 발생한 권력형 비리에 대해선 꼬리자르기 방식으로 처리하고 여당과 일부야당이 동참하여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준연동형비례제도를 도입하여 군소정당에 유리하도록 처리한 것은 법치의 유린이자 유권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국민기만 행위라고 본다.

지금은 듣기가 어려운 말이지만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현상을 빗댄 것이다. 동물들의 생존방식을 보면 홀로서기를 하는 동물이 있고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이 있다. 육식동물이나 조류의 경우 어미들이 새끼를 양육하는 광경을 보면 생존에 필요한 사냥기술을 전수하며 홀로서기가 가능할 때가 되면 어미와 새끼의 연을 끊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떠나보낸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사전에 선거에 대한 충분한 지식조차 전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서울시선관위가 서울소재 고교에 대한 모의선거운동을 불허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교육청이 교내에서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이같은 사태가 발발한 것은 선거연령 인하와 관련하여 당정이 사전에 철저한 분석과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알아야 면장을 할 수 있다’는 속담이 있다. 유권자가 정치에 대한 상식과 식견을 갖춰야 비로소 국가와 민족을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고교학습과정에서 국민의 도리와 의무를 비롯하여 국내외 정치에 대한 분석과 토론 등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사회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할 수 있는 교육을 먼저 실시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호경 울산 남구 신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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