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봄에 대한 자각은 정서적 반응의 결과다. 이 반응은 새싹이 움트고 먼 산의 울림이 가까워 질 때 생겨난다. 울림은 사물이 몸을 떨 때 생기는 공기의 파동이 우리의 몸속으로 전해진 것인데, 울림의 속도는 기온에 비례하여 봄이 되면 더욱 빨라진다. 먼 산의 새 울음소리가 봄에 더욱 가까이서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입춘이 지났어도 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절기상의 봄이 한 겨울에 시작되어 우리들의 정서적 반응을 매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春來不似春).

최근 국립정신건강센터는 ‘2019년 국민 건강지식 및 태도조사 결과보고서’를 공개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우울증을 포함하여 정신건강문제를 5가지 이상 경험한 고위험군이 무려 20.4%에 달했다. 국민 5명당 1명꼴이다. 수일간 지속되는 우울감과 불안,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의 기분변화, 자제할 수 없는 분노표출 등의 순이었고, 불안과 분노는 전년대비 2% 이상 증가 했다.

사회적 갈등과 국민정신건강의 관계는 밀접하다. 작년 한해 진영은 끊임없이 충돌했고 갈등은 치열했다. 분노는 증폭되었고 불안은 확산됐다. 논리는 주장하고 설득하고 조작하는 수단일 뿐, 진리를 찾는 수단이 아니었음(Hugo Mercier and Dan Sperber)을 이미 우리는 알아차렸다. 이제는 신종 역병까지 더해져 불안하고 우울하다. 우왕좌왕 초동대처와 중국의 눈치 보기는 불안과 분노에 한 점을 더한다. 사람이 길(道)을 버리면 길 또한 사람을 버린다고 했다. 길은 아무리 어려워도 버릴 수 없는 희망이다. 버리지 않는 한 스스로 길이 되어 걸어간다(정호승 ‘희망의 그림자’).

봄은 아직 멀었는가. 입춘이 지났는데 역병의 소식만 가득하다. 그러나 기어이 봄은 올 것이다. 기어코 봄은 오는데 다가오는 봄은 물러가는 계절과 다투지 않는다. 서로 서로 이끌고 당기면서 그렇게 봄은 올 것이다. 정의의 심성을 허물고 공정의 대안을 더럽히는 불의(不義)앞에 봄은 아득한 희망이지만 희망은 늘 가까운 곳에 있어 슬픔을 쓰다듬는다.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매화는 툭 툭 별처럼 돋아나 별처럼 반짝인다. 봄은 기어코 올 것이지만 기다리는 마음은 아득한 향기처럼 멀기만 하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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