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울산여상 교사

4년 전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고등학생들과 독서 토론을 했던 적이 있었다. 매일 폭격과 총성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은 평화롭고 풍요한 우리나라에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한 학생이 내게 물었다. “전쟁의 반대가 평화인가요?” 그때 내가 했던 대답은 “아니! 일상(日常)이야.”였다. 평화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하루인 일상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게 평화에 가장 가까운 상태가 아닐까.

4년 전 일이 다시 떠오르는 건 아마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2020학년도 신학기가 시작되는 오늘, 평소였으면 학교마다 입학식과 시업식을 했을 것이다. 학생들은 새로운 학년의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은 누굴까 하는 설레는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이런 당연한 일상이 잠시 사라졌다.

지난 2월22일 토요일 저녁 남구 지역 ‘코로나19’ 확진자로 인해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이 휴원명령에 들어갔다. 24일 월요일 오전에 돌봄교실에 갔던 첫째는 확진자와 같은 지역에 근무한 부모가 계신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귀가했다. 이어 학원들도 모두 임시 휴원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첫째와 둘째는 계속 집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평소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를 바랐지만 막상 의도치 않은 상황에 처하니 평소 ‘전쟁과 같은’ 일상이 그리워진다. 아침이면 후닥닥 챙겨서 첫째를 학교에,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정신없이 출근한다. 학급의 출결을 체크하고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수업, 그리고 점심을 먹는다. 나른한 5교시와 6교시가 끝나고 이제는 청소시간이다. 첫째는 지금쯤 돌봄교실에서 나와 피아노학원 차를 탔을 것이다. 둘째는 막 낮잠을 끝내고 간식을 먹을 시간이다. 마지막 7교시 수업을 끝내고 종례, 드디어 퇴근이다. 퇴근길에 둘째를 찾고 저녁거리를 사서 집으로 간다. 저녁 7시 무렵 온 가족이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TV를 보며 여유를 즐긴다.

‘코로나19’로 인해 너무 당연해서 달리 돌아볼 이유가 없었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일상의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고마운 역할로 이 모든 것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아이들의 선생님, 돌봄 선생님, 학원 차량 운전기사님, 피아노 선생님까지 고맙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강구연월(康衢煙月)이라는 표현이 있다. 강구는 사통오달의 큰길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 연월은 연기가 나고 달빛이 비친다는 뜻이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는 저녁,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바쁜 발걸음이 가득한 큰 길의 풍경이 떠오르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는 것 그것이 평화가 아닐까? ‘코로나19’의 비상사태가 무사히 끝나고 성남동의 가득한 인파 속을 아무런 걱정없이 걸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모두 강건(康健)하시기를! 양수진 울산여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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