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있는 병원에 들리면 현관이나 복도 등에서 가슴에 "물어보세요"라는 안내배지를 달고 있는 노인들을 자주 본다. 가끔 누가 환자인지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지속적 경제성장, 생활수준 향상과 의학발전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에 원치 않더라도 80세까지의 인생여정을 설계하여야 한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우선 소득감소와 경제적 어려움을 들 수 있다. 더구나 사오정이다, 오륙도다 하면서 조기은퇴가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장기 계획을 수립하여야 할 실정이다. 욕심을 버리면 그렇게 무리하게 돈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돈만 아는 나홀로 자린고비 치고 행복한 사람은 없다. 최소한 생활만 된다면 돈에 노예가 되기보다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부자가 되어 여유를 찾아야 한다.

 다음은 신체적인 노화현상이다. 나이가 들어 각종 성인병(고혈압, 심장병, 당뇨, 암, 뇌졸중, 관절염)을 피할 수 없다면 평소에 재테크보다 재건강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노년에 가장 많은 경제적 부담은 의료비 지출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늙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살고 있다는 자체가 하느님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항상 감사하며 집착을 버리고 베푼다면 건강에 이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 나이가 들어 시력이 약화되고 청력이 감소하는 것도 사소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하늘의 뜻일 지도 모른다.

 다음은 심리적 노화현상이다. 사회적 활동의 위축과 가정내에서의 역할 감소이다. 노인을 가장 실망시키는 현실은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죽음만 기다린다는 압박감이다. 그동안 미뤄온 하고 싶은 일과 취미와 봉사를 시작한다면 진정한 삶의 진미를 찾을 것이다. 죽음은 나이가 들어 갑작스럽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시인 구상은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은 영원속의 한 과정이며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마음이 가난한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천국과 천당을 찬양하는 사람들도 저 세상보다 이 지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안도하고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죽음도 아름다운 삶의 결과이다.

 다음은 여가선용과 사회에서의 재역할을 창조하여야 한다. 공동사회에서 열외가 된다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 괴롭다. 노인의 자살율이 높아지는 이유도 경제적 혹은 건강문제 보다는 사회적 소외이다. 모든 욕망을 버리고 참다운 삶과 이웃에 부담없는 봉사의 삶을 산다면 눈을 가렸던 안개가 걷히고 행복이 보인다. 생명과 재능이 나만의 소유는 아니다. 그동안 살면서 가족과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가. 손에 꽉 진 욕심을 내려놓으면 나비같이 가뿐한 마음으로 즐겁게 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어제는 어린이였고, 오늘은 청·장년이지만 내일은 노인이다. 인간이 모여 사는 공동체 사회는 층층이 나이테를 두른 커다란 나무와 같다. 맨 바깥층은 딱딱하고 굳고 거친 노년세대라면 그 속의 견고한 층은 중년, 안의 연약한 속질은 어린이다. 겉딱정이는 보잘 것 없지만 그 보호막으로 중년세대가 성장하였고, 이 토대위에 청년과 아동이 자란다. 늙은 껍질은 거칠고 아름답지도, 유연하지도 않지만 안쪽의 젊고 연한 나무층을 보호하고 바람막이 역할을 하며 무더위와 강추위로부터 그들을 지켜왔다. 때론 연한 나무속의 층들이 바깥의 껍질이 자신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나 껍질은 단순한 성장과 발전의 방해물이 아니라 그들이 어느정도 성숙할 때까지 중요한 보호막이다.

 노년의 세련과 젊은이의 활력이 조화되어야 사회가 자연스럽게 굴러간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에서 "나이가 들어 인생이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을 때 비로소 늙으며 세월은 피부에 주름을 더하지만 정열을 잃을 때에는 정신이 시든다"고 하였다. 그대들의 희생이 우리나라를 빈곤에서 구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얽매임 없이 이웃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존경받는 어른으로 남을 것이다.

 기백도 이상도 없는 늙은 젊은이보다 넓은 아량과 온화한 인품을 가진 젊은 늙은이가 한 여름 황혼의 햇살마냥 곡실을 여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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