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정치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
보통사람보다 많은 자산을 가진 자는
리더가 돼서 무리를 이끌 자질 갖춰야

▲ 전상귀 법무법인 현재 대표변호사

유행병으로 경제가 휘청인다. 경제인과 정치인들이 나서서 온갖구호를 외친다. 정치와 경제는 분명 어려운 숙제임이 분명하다. 정치와 경제는 해결가능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정답은 포기하고 모범답안이라도 없을까?

최근 필자는 조선후기의 이재운이라는 분이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을 썼음을 알게 되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분명하던 시절에 화식(貨殖)을 입에 담기가 민망했는지 사마천 <사기(史記)>의 화식열전(貨殖列傳)의 글에 기대어 글을 썼다. 주된 내용은 신분에 상관없이 상업에 종사하여 부를 이룬 사례집이다. 이재(理財)에 관하여 전혀 이론적이지 아니한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1750년대로 보고 있다. 영국의 애덤스미스가 <국부론(國富論)>을 쓴 때가 1776년이니 격차가 나도 너무 난다. 서양에서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꽃을 피우고 있을 때 우리는 겨우 상업에 종사하면 모두 달려들어 뜯어 말리고 깔보던 시절. 그렇다고 동양에 화식에 관한 공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은 대략 기원전 90년경에 쓰여진 것이니. 대부분 독자들은 이재운은 몰라도 사마천은 안다. 사마천은 알지만 사마천의 이재에 대한 글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화식열전의 글을 읽으면서 경제와 정치공부가 왜 필요한지를 생각해 본다. 범편호지민, 부상십즉비하지, 백즉외탄지, 천즉역, 만즉복, 물지리야(凡編戶之民, 富相什則卑下之, 伯則畏憚之, 千則役, 萬則僕, 物之理也) 인간 사마천의 말이니 반드시 옳겠는가. 일단, 사마천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보통사람은 자산이 자신보다 열배쯤 되어 보이면 깔보거나 헐뜯는다. 아직은 경쟁의 상대이니 상대를 경계하면서 자신을 비슷하게 위치를 맞추어 보려고 애쓴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상대의 자산이 백배라고 생각하면 두려워하며 탄식을 한다. 백배인 상대를 두고는 더 이상 경쟁은 포기하고 체념에 이른다는 뜻이리라. 상대의 자산이 천배이면 찾아가서 일을 맡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독자들도 필자와 함께 자신의 자산에 천배가 되는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할지 상상해 보자. 사마천은 상대의 자산이 자기보다 만배가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는 이유를 따지지 않고 복종하리라 생각했나보다.

필자는 사마천의 생각만 읽고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다. 입장과 당사자를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자산이야 반드시 부에만 한정되겠는가. 명예, 학식, 덕망 등을 종합하여 자산이라 여기는 것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리라.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자식들에게 그 대비책을 알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자기의 자산이 타인의 평균자산에 열배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사마천의 말마따나 비하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이때 여기에 흔들리지 않고 인간적으로 동행(同行)하는 자세의 함양이 필요하리라. 만일 자신의 자산이 백배 많다고 생각되면 리더가 되어 탄식하고 체념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자질이 필요하지 않을까. 만일 자신의 자산이 보통의 천배가 된다고 하면 일하고자(役)하는 사람을 잘 관리하는 경영(經營)을 알아야 할 듯 싶다. 자신이 평균의 만배라면 모두 엎드려(僕) 뜻을 받들고자 할 것이니 이들을 지도할 지도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정치를 알아야 하리라.

가끔 금수저네 흙수저네 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비하(卑下)하거나 또는 외탄(畏憚)만 거듭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자질과 환경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못한다. 누구이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입장(立場)이 생기기 마련이다. 연일 미디어에서 천배 만배로 태어났지만 경영이나 정치의 도(道)의 부재라는 이유로 수모를 겪는 경우를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비하(卑下), 외탄(畏憚), 역(役), 복(僕)과 아울러 동행(同行), 리더(Leader), 경영(經營), 정치(政治)는 동전의 양면인 것 같다. 이 양면성의 교육이야 말로 사물의 이치(物之理)에 대한 공부의 근본이라 하겠다.

전상귀 법무법인 현재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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