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 단행
확진자 숫자 내세웠지만 명분 부족해
각국, 코로나 사태 인류애로 대처해야

▲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에 출간한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진화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유전자라고 주장했다. 유전자는 자기 자손을 남기기 위해 생물체를 희생시킬 수도 있는 이기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유전자가 생존과 증식에 유리한 선택을 한 결과로 생물의 진화가 이뤄졌으며, 그 과정에서 생물체는 유전자의 운반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위주로 자연계를 바라보는 전통적 인식을 역전시키는 파격적인 관점이었다.

그런데 도킨스가 최근 우생학(優生學) 지지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트위터에 ‘우생학이 소, 돼지, 개 그리고 장미에 대해 효과가 있다면 인간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다’고 썼다. ‘정치적, 도덕적 비난과는 별개로 우생학을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우유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소를 개량하듯이 인간을 더 빨리 달리거나 높이 뛰도록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과학과 우생학을 둘러싼 격렬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우생학은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했던 극단적 사례가 나치의 ‘인종청소’였으며 한국에서도 일제시기에 한센병 환자 등에 대해 강제 단종수술이 실시된 바 있다. 우생학은 순종과 잡종, 우량, 개량 등의 개념을 근거로 성립한다. 그것은 사실이나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가치 판단이다. 우유를 더 많이 생산하는 소는 우유를 위주로 소를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에서만 ‘우수’하다. 과학적으로 인간을 더 빨리 달리거나 더 높이 뛰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과학으로서의 진화론에서는 생물의 진화에 대해 좋다거나 나쁘다는 가치 판단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연계에 나타난 변화는 그것을 해석하는 정치적 도덕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가치 판단은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관련되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면서 모두의 스트레스가 점증하고 있다.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의 관행들을 포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단한 일이다. 마스크를 끼게 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수많은 사람들과의 접촉 위에서 유지되어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바이러스로 인한 초유의 경험에서 굳이 의미를 찾아본다면, 일상생활과 다양한 인간관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말처럼 신종코로나는 국경이나 인종, 민족, 국내총생산이나 발전수준을 가리지 않고 전파된다. 처음에 중국 우한에서 대규모 감염사태가 발생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위생과 문화의 후진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확인되듯이 이 바이러스의 확산은 인간 사회를 구분하는 여러 기준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관련이 있다면 바이러스 전파의 주요 통로인 대면접촉이나 위생에 관한 문화적 차이일 것이다.

일본 정부는 3월9일자로 비자 면제 중단 등 한국인에 대해 입국 제한 조치를 일방적으로 단행했다. 아베 정부의 미온적이고 무능한 대처에 대한 자국 내 비난을 호도하고 일본 극우의 혐한 감정에 편승한 조치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비판이 거세다. 뒤늦게 한국의 확진자 숫자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3월11일 현재 중국에 이어 이탈리아와 이란의 확진자 수가 한국보다 많다. EU에서는 확산을 막기 위해 이동을 관리 통제하고 있지만 ‘국경 폐쇄’같은 강경 조치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인 입국을 제한했지만 이탈리아인에 대해서는 동일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국적이나 국경을 따지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국가라는 범주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모든 국가가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고 감염 예방과 치료 방법을 찾는데 골몰하고 있지만, 각국별 대응과 대책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확진자 수나 치사율 차이는 신종코로나가 아니라 상이한 정부의 대응과 대책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각국 정부가 해야할 일은 이웃 나라를 비난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초국적 정보 공유와 협력을 통해 국적 없는 바이러스에 인류애를 갖고 함께 대처하는 것이다.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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