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미옥 호계고등학교 교사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한다.……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 중에서

새는 새로운 세상에 나오기 위해 알의 껍질을 깬다. 그 알은 바로 그 새의 기존 세상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 바깥·세상에서 드디어 날개를 펴고 드높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 비로소 새는 새답게 살아간다.

흘러왔듯이 흘러가던 일상이 멈추었다. 한동안 어찌해야할지 안절부절못했다. 지금도 불안하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2월 중순, 옮겨갈 학교가 발표나자 그날 바로 새 학교에 다녀왔다. 정든 곳을 떠나야한다는 실감을 위해서였다. 옮겨갈 학교는 화장실 공사로 한창이다. 내 마음처럼 어수선했다. 5년을 근무하며 곳곳에 뿌리 내린 정을 하나하나 살피며 일주일을 보냈다. 붙박이로 사는 나무도 아닌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흙인지 뿌리인지 구분되지 않는 실뿌리가 복잡하다. 씨 뿌릴 흙을 고르듯 머물렀던 자리에 흔적을 없애며 허전해지는 마음을 청소한다. 가볍고 개운하다. 옮겨 간다는 것이 서서히 실감으로 다가온다. 얼른 짐을 부리고 싶다.

2월 말에 있을 교직원 전체 모임을 연기한다는 문자가 왔다. 수업계획을 짜야하는데, 내가 맡을 업무는 뭘까, 담임을 맡아 ‘우리선생님’으로 살게 될까 어떨까. 3월2일 개학은 미뤄졌다. 다시 두 주가 연기되었다. 또 다시 두 주를 더 연기하여 4월에 개학하게 됐다.

바깥·세상에서 학생들을 만나지 못하고, 동료들을 만나지 못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카톡’ ‘카톡’ 모바일로 날아오는 소식이 바쁘다. 올해 나는 2학년 아이들과 문학 공부를 하게 되었고 서른셋 학생들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는 것을 ‘카카오 톡’ 언어로 읽었다. 생생한 말의 표현이 빠져 있는 카카오 톡 언어는 서먹서먹하다. 눈은 어디다 두고 귀를 열어야 할지 마음 둘 데 없어 자꾸만 허전하다. 눈부처 마주한 적 없는 우리반 아이들과 카톡으로 하루의 안부를 묻는다. 교과서에 인용된 시를, 곧 만나게 될 교실에서 옹기종기 마주 앉아 함께 읽고 따순 이야기 나누길 바라는 단편소설을 보낸다. 또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되어, 아이들 목소리 들려오지 않는 조용한 학교를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근무하게 되겠지. 나는 기껏 카톡의 언어로 수업준비를 하고 학교 일을 하고. 초침같이 다가오는 일들로 혼을 빼놓던 3월 하루하루가 어깨에 짐이 되어 무겁고 느리게 지나가고 있다.

‘오늘 난 두 아이에게서 배웁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등불이 될 수 있다는 걸’……

시 ‘등불’ 중에서(오봉옥)

어쩌면 서로에게 등불로 살아갈 그곳 바깥은 그 언제 마음 놓을 수 있는 마땅한 세상으로 우리를 맞을까? 함께 온기를 나누며 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살던 우리가 어찌 서로의 숨쉬기를 입마개로 막아야하게 되었는가?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 중에서(김수영)

기침도 권할 수 없는 세상, 3월을 보내고 있다. 모두 무탈하기를 두 손 모으는 마음이다.

알을 깨는 새는 바깥을 의심하지 않는 법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새는 파란 창공이 드넓게 펼쳐져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장차 날개 짓으로 맘껏 공기를 가를 그 세상을 어찌 단 한 순간이라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신미옥 호계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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