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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철 울산교육청 학부모기자단

해마다 새학기 시작에 앞서 선생님들은 학생들과의 연분홍 인연을 꿈꾸느라 나름 부지런한 개미가 되어 몸도 마음도 바쁘다. 밤새 봄비가 슬며시 내려 언 땅을 적셔놓듯 선생님도 새 학년 새 학생을 적실 꿈을 부풀린다. 묵은 교실의 짐을 정리하고 새 교실로 이사를 간다. 교실의 이곳저곳을 쓸고 닦으며 몇 번이고 심사숙고하여 쓸모 있는 배움의 새 터를 마련한다.

그곳에서 2020년 한 해의 인연을 달콤하게 꾸려 갈 예정이다. 문뜩 피천득 시인의 인연이란 시가 생각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사람들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 사람과 인연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인연으로 엮어 있다.

학교 공동체에선 배움의 부분을 보충하는 계획으로 바쁘다. 더 의미 있는 배움이 되도록 새 학년 맞이 교사 연수를 꼼꼼하게 챙겨 준다. 배움과 행복이 건실한 기둥이 되어 학교를 받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수업 기법과 생활지도 방안에 대하여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다. 2020년 더 나은 선생님으로 꿈을 채워 학생들에게 덜어 주기 위해서다.

선생님뿐 아니라 학부모, 학생에게도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는 시점이다. 새 출발에 대한 설렘과 알 수 없기에 찾아오는 낯선 두려움도 있다. 어떤 선생님을 만날까? 어떤 학생을 만나고 어떤 부모님을 만나게 될까? 모두 같이 겪는 생각의 흐름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희망이라는 달콤한 마음이 연분홍 봄빛으로 인연의 길을 열 것임을 믿는다.

2020년 해맞이를 보면서 소원을 빈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만물이 소생하고 생동하는 계절 봄의 시작 3월이다. 겨울을 맞으면서 다양한 형태로 겨우살이에 들어간 식물들은 겉으로는 앙상한 모습이지만 안에서는 봄을 맞아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준비가 한창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들은 물론 식물들 역시 보이지는 않지만 물, 영양, 햇빛 등을 쟁취하기 위한 가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학생들이 활동하는 학교에서도 예외 없이 일어나고 있다.

3월은 개학과 입학으로 학생들은 새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또 입학하는 자녀에 대한 대견함과 기대감으로 학부모들의 마음도 뿌듯한 시기이다. 그러나 3월의 교실이 아름답기만 할까 학부모들의 마음 한편에는 혹시 내 아이가 이른바 왕따 등 원활하지 못한 교우관계로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동반한다.

2020년 올해는 두차례 개학연기로 학교에서 한 해의 시작이 늦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을 막고 생명을 보호하려는 조치로 개학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 생활에서 오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 나라의 국민들이 똘똘 뭉쳤다. 선생님은 문자나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가정학습과 신종코로나 예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긴급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일일 돌봄 교사를 자처하기도 한다. 어려움이 있을 때 항상 서로 도와 극복했던 저력으로 또 한 번 고비를 넘기고 있다. 3월의 중간치를 걸어오는 길에 봄이 와서 진달래, 산수유, 매화꽃이 마스크 낀 사람의 마음을 달래 준다. 버들강아지도 파릇한 새순을 내밀며 앞서거니 힘차게 걷고 있다. 자연은 코로나가 다 끝났다고 어서 와라 손짓하는데 뉴스엔 오늘도 감염자가 몇 백이 늘었다 하고, 긴급 안내 문자가 수시로 손 전화를 울려 댄다.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한다는 선인들의 말이 있다. 학생들이 없는 빈 교실을 몇 번이나 왔다 가는 선생님의 마음이 문득문득 길을 잃기도 한다. 선생님 하고 불러 주는 학생들이 없기에 선생님의 마음엔 아직 봄이 들어앉지 못한다. 사랑을 덜어 주고 사랑을 불려 줄 학생을 겸손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의 끝엔 학생들의 숨은 보석을 함께 찾아내는 흥미롭고 진지한 1년의 모험이 시작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얼마의 보석을 캘 것인지는 인연을 만들 각자의 몫이라 해두자. 이영철 울산교육청 학부모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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