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영 안전보건공단 울산지역본부장

최근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유채꽃을 보기 위해 관광지를 찾는 상춘객이 증가하고 있어 해당 지자체에서 유채꽃밭을 갈아엎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벚꽃이 피었을 때는 사람이 몰리는 것을 예방하자고 살수차를 동원해 다 떨어뜨리자는 댓글도 보았다.

이러한 글을 보며 ‘톰소여의 모험’등을 집필한 미국의 소설가 마크트웨인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 말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현인 것 같다.

코로나는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여 WHO에서 전염병 최고 경보단계인 ‘펜데믹(Pandemic)’을 설립이래 3번째로 선언하게 되었다. 소위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나라에서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거나 사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드라이브스루 검사소와 마스크5부제 등 발빠른 정부 대처와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확진자 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계 정상들이 박수를 보내며 자문을 구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지금 우리는 자만하고, 방심하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는 아직 치료제가 없다. 자연치유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확진자 수가 하루 한 자릿수까지 줄어들며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코로나19가 종식된 것이 아니기에 언제든 다시금 창궐할 수 있다. ‘나 하나쯤은’이 아니라 ‘나 한명이라도’라는 생각으로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며 안전을 생각할 때이다. 내가 안전해야 내 가족이 안전하고, 내 가족이 안전해야 사회가 안전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산업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안전불감증’. 나에게는, 우리 사업장에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은 반드시 사고로 이어진다. 사고가 안날것이다라는 ‘막연한 믿음’ 보다 그에 수반되는 ‘행동’이 필요하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고 독일 법학자 루돌프 폰예림이 말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도 침해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안전할 권리’를 지키려 노력해야만 그에 맞는 결과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보다는 돈과 편의가 우선시 되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2019년 산업현장에서 안전규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사망자수가 855명이나 된다. 이는 2018년도 971명 보다 많이 줄어든 수치이긴 하나 미국, 독일, 영국 등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 비해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사고사망자수 비율)이 적게는 2배, 많게는 10배이상 높은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사고사망자수를 2022년까지 500명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그 실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고삐를 더 단단히 조여매야 그 이상의 실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사망자 수치만 보면 현재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229명)보다 사고사망자수(855명)가 더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산업안전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업종(제조업, 건설업)에 한해서 사고사망자수가 많이 발생하기에 국민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우리 공단은 사망사고 예방에 초점을 둬 취약업종에 재정지원, 패트롤 점검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엔 이를 받쳐주기 위해서는 현장의 관심과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안전을 생활화하여 약간의 불편을 감수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사고를 감소시킬 수 있다. 기본을 지켜 코로나를 감소시켜 나간 것처럼 산업현장에서도 방심하지 않고 기본을 지켜나간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주영 안전보건공단 울산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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