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4·15 총선의 결과를 지켜보며
유권자들의 세대교체 절감해
보수야당에 우호적인 산업화세대
그들의 애국방법은 이젠 힘을 잃어
전경서 배경으로 옮겨앉은 보수우파는
사회의 주축이 된 젊은 세대들 역시
나라 장래 걱정하는 사람임을 깨닫고
역사 흐름 받아들이며 노심초사 말길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잡은 세대들은
공정·정의로 포장된 진영논리 직시해
나라 거덜난 베네수엘라 전철 밟지않길

총선에서 보수가 괴멸했다. 입방아 찧기에 능수능란한 정치평론가들의 각종 분석이 봇물을 이룬다. 거의 모두가 보수정치집단의 오판과 과오에 대해 집중된다. ‘김대호, 차명진의 막말파동이 중도가 보수에 등 돌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들의 제명과정이 너무 어설픈 나머지 중도가 마지막 희망마저 포기한 채 뒤도 안돌아보고 떠났다.’ ‘애당초 공관위가 입후보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공정성을 잃었고, 진짜보수 가짜보수로 나누는 등 고질적인 내분이 또 도졌다.’ ‘보수정당이 중도를 잡으려다 집토끼의 표마저 투표장으로 모으는데 실패했다.’ ‘어정쩡한 스탠스 때문에 중도와 보수를 모두 놓쳤다.’ ‘지도부의 리더십이 부족했다’ ‘황교안의 대권욕심으로 인한 뺄셈정치로 경쟁자들을 내쫓는 편협함을 보였다.’ ‘황교안의 종로 출마, 김종인의 영입이 너무 늦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자, 진보가 승리하면 사회주의로 가서 큰일 나고, 보수가 승리하면 이를 막겠다고만 했지, 눈이 번쩍 뜨일만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 재난지원금이 정권심판의 동력을 상실케 했다.’ 등등. 심지어 정치철학계의 고수(高手)중 한사람인 윤평중 교수는 ‘천민(賤民)자본주의에 빠진 보수 세력은 정치전면에서 사라지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자조적(自嘲的)인지 진보바라기인지 모를 논평을 내놓기까지 했다.

나는 정치를 모른다. ‘공돌(工乭)’이라 정치공학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른다. 그러한 나에게 이번의 총선결과는 ‘한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냈다’라는 유권자의 세대교체느낌으로 다가왔다. ‘중절모 쓴 노인들이 주말마다 모여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들며 시위하는 모습, 군복에 빨간 모자 선글라스 끼고 군대식 경례하며 목청높이는 모습, 청와대 앞 도로에서 숱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는 일부기독교인의 몸부림도 이제 보기 싫다. 보수야당도 대략 그 부류 아니냐’라는 얘기다. ‘어떻게 해서 지켜낸 자유민주주의요, 어떻게 해서 이루어낸 산업화요, 어떻게 해서 세계 10대 국가 안에 자리 잡게 했는데… 하며 절규하는 지난 세대의 모습도 더 이상 보기 싫다. 얼마나 싫은가하면, 포퓰리즘, 시진핑, 김정은 바라기보다도 더 싫다’라는 메시지로 나에겐 읽혔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2000여 년 동안 헐벗고 굶주리고 타국의 속박 속에서 살며 지내온 슬픈 역사를 끝내고 사상 최초로 먹고살만한 나라로 바꾼 산업화세대의 애국정신과 피맺힌 절규도 이제 그 용도를 다한 것처럼 보인다. ‘나를 희생하여 부(富)를 만들고 이를 통해 가족과 국가의 발전을 이루자. 그 부를 나누는 것은 그 다음 얘기’라는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산업화세대의 논리는 사망했다. 돈을 모으고 나서 집을 사고, 그리고 또 돈을 모은 후에 차를 사는 그들의 사고방식(思考方式)도 종말을 고(告)했다. 기업이 부를 만들어야 이를 나눌 수 있다는 논리보다, 정부가 기업과 부자로부터 거둔 세금을 나눠주기를 통해 소비를 증가시켜야 기업이 돌아가 부가 생성된다는 ‘마차가 말을 끄는’ 논리가 더 먹혔다. ‘집과 차를 먼저 장만해야 돈을 벌게 된다’라는 것이 요즘의 경제논리이던가? 사실상 젊은이들은 돈 없이 차를 먼저 사고 나중에 쪼개 갚는다. 기성세대는 죽었다 깨나도 이해가 안 되는 바다.

그렇다. 이제 ‘나 때는 말이야~’ 라며 울부짖는 산업화세대의 애국방법을 젊은이들이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알았다. 이제 1960~70년대에 몸을 불살라 희생했던 산업화세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때인 것 같다. 전경(前景)에서 배경(背景)으로 자리를 옮겨 앉을 때가 온 것 같다. 대신 사회의 중추는 1980~90년대에 머리가 커진 세대가 차지했다.

이제 나라의 장래를 노심초사(勞心焦思) 걱정하는 보수우파는 이번 결과에 너무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가운데를 차지한 그들 역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기를 기대해야 한다. 그게 역사의 흐름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그렇더라도 산업화를 통해 나라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그 자긍심만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제 바람은 한 가지.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 잡은 그들은 자신들을 이끄는 정치리더 일부의 생각이 겉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앞세우나 실제로는 사회주의화, 북한정권과의 비정상적 관계의 구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결코 역사와 민족 앞에 죄를 짓지 말기를 바랄뿐이다. 2000~10년대 교육받은 자유 발랄한 사랑스런 디지털정보화시대의 청소년들에게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를 물려줄 수야 없지 않겠는가.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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