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소운 울산옹기박물관 큐레이터

얼마 전 영화 ‘저 산 너머’가 개봉됐다. ‘저 산 너머’는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신부가 되기까지 삶의 과정을 잔잔한 감동으로 그린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가 옹기를 잔뜩 지고 가는 장면을 시작으로 어린 수환의 말벗 상대로 옹기가 등장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본인 몸집보다 더 큰 독에 들어가 분필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옹기 속에 자리 잡고 앉아 하늘을 내다보며 머릿속 번뇌를 정리하기도 한다. 영화에 이렇게 옹기를 대상화하여 연출하는 이유는 옹기가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무관하지 않고, 비유적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어린시절부터 천주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할아버지 때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의 조부는 1868년 무진박해 때 충남 논산에서 체포당해 서울에서 순교했고, 이러한 연유로 그의 아버지는 유복자로 태어나 옹기장수로 전전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어머니도 옹기 행상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은퇴한 이후 처음으로 설립한 장학회에서 그의 호(號)를 옹기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상황과 관련이 있다. 옹기는 김수환 추기경의 삶 속에 자연히 녹아든 쉼표로서 견디고, 품고, 비워내는 존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천주교인들의 삶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옹기는 대다수 천주교인에게 박해를 피해 굶주림을 면하게 해 준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천주교인들은 산에 숨어 생활하며 옹기를 생계자원으로 활용했다.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흙과 목재여서 옹기를 만들기가 수월한 환경이었고, 이를 매매수단으로 삼아 천주교의 소식을 알리거나 전해 들었다. 과거 옹기장수의 직계를 조사해보면, 선조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로 밝혀지는 것도 이와 관련 있고, 오랜 세월을 간직한 옹기에서 후미진 부분에 숨겨진 십자가 문양이 발견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옹기는 당시 천주교인에게 굴곡진 삶을 희망으로 만들어 준 선물이었다. 문소운 울산옹기박물관 큐레이터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