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식 울산시교육청 비서실장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주 쓰던 말이다. 기분 좋을 리 없다. 당신이 지금 하거나 시도하는 일이 별 것 아니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꼰대의 말씀’이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다.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교육 기관도 모두 처음 가보는 길이다. 생소하고 두렵고 때론 묘하게 모험심을 자극하는 길이기도 하다.

수업을 하면서 참 다양한 전자 매체 도구를 사용해봤다. 파워포인트로 지루한 교안을 만들어봤고, 베가스 프리미어 등을 활용하여 영상도 만들어봤다. 지금이야 모듈화된 영상 제작 프로그램이 많지만 초창기(?)에는 모든 과정을 타임라인 위에서 수작업을 했다. 1분짜리 영상 하나 만드는데 랜더링만 30분씩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보여주면 교사인 나만 뿌듯하고 정작 학생들은 ‘노잼’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스위시 프로그램을 이용해 플래시 파일도 만들어 한자 획순 수업에도 활용했고, 인터렉티브한 교안과 퀴즈 문제도 만들어 사용해 봤다.

퇴직하기 전 3년여는 아예 학습 사이트를 만들어 학습지 생성, 수업 프리젠테이션, 문항출제, 온라인 수행평가까지 해봤다. 퇴직한 지금도 여전히 호스팅 경비를 지불하며 사이트를 유지하고 있다. 이쯤에 감히 ‘꼰대의 말씀’ 하나 ‘투척’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뭣이 중헌디?’

온라인 개학은 수업 도구나 방법을 혁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학습 내용에 대한 협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졌다. 교사들의 자발성이 곁들여진다면 학생들의 눈높이에 걸맞은 흥미로운 학습 환경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도구가 본질이 될 수는 없다. 더 나은 도구를 찾기 위해 경쟁하면서 정작 그 도구를 왜 찾는지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완벽한 본말전도다. 한때는 어리석게도 자료 만드는데 밤을 새기도 했다. 그 시간에 아이들과 대화하고 상담 준비를 더 했더라면 어땠을까? ‘치장하느라 신주 단지 개 물어간다’고 질책을 받아도 쌀 일이다

지금의 온라인 개학이 궁여지책임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온라인 수업이 차질없이 진행된다고 해서 교실 수업에서 이루어야 할 교육 목표가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그 얼굴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읽고 눈빛을 통해 교감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우리가 얘기하는 전인적 발달이라는 수업 목표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온라인 개학은,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고 그런 ‘공문을 기안하고 내리고 있는’ 교육부 교육청 담당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모니터와 스마트 기기 앞에 붙들려 있어야 하는 학생들과 ‘Zoom’을 통해 그들의 출석을 확인해야 하는 교사들의 ‘멘붕’은 이미 전국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을 ‘오프라인’으로 챙겨줄 수 없는 부모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어렵고 힘든 상황이다. 각종 대책이 백가쟁명이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길은 찾아야 한다. 적진 깊숙한 곳에서 길을 잃은 관중이 늙을 말을 풀어 길을 찾았다고 한다. 늙은 말의 경험을 이용하여 목숨을 건졌다는 얘기다.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일화다.

온라인 학습 구축 과정에서 곤란은 겪는 선생님들도 많다. ‘명퇴’를 하소연하는 정도니 어느 정도 고충인지 알만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경륜과 경험이 더 많은 분들이 필요하진 않을까? 도구 사용이 생소하고 서툴다고 해서 그간 쌓아 온 교육 경험이 ‘제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쌍방향 수업 플랫폼을 구축하고 컨텐츠를 탑재하는 능력도 소중하지만 어두운 길을 헤쳐나갈 지혜가 더 필요해 보인다. 작금의 상황에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온라인 교육’에 체온을 불어넣는 ‘노병’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조용식 울산시교육청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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