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혜경 울산 중구의회 의원

곡학아세(曲學阿世)란 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학문(學問)을 왜곡해서 세속의 인기에 영합하려 애씀’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렇다면 곡학아세는 전문적으로 체계화된 지식을 가진 이가 세속의 인기에 영합해야 뜻이 통한다. 이런 지식을 가진 이가 세속에 영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금전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권력을 탐하는 경우 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폴리페서’라는 말이 꽤 널리 회자 되고 있다.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이나 국무위원급 인물 중에는 법조인도 많지만 교수 출신들도 많다.

특히 대학교수 중에는 진리 탐구와 같은 학문 활동보다는 세속적 권력 탐구에 진력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특히 이들을 폴리페서라 부른다. 그런데 폴리페서가 되려면 최고 권력자의 눈에 들거나 그도 아니면 세칭 일류 대학이라도 나와야 꿈이라도 꿔 볼 수 있기에 아무나 노릴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학문했던 경력으로 보다 쉽게 곡학아세하는 방법이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일이다. 1995년부터 본격적인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정치인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지방권 력에 부응하는 전문가 그룹도 등장했다. 이들은 지방정치인들과 동창과 동업 같은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 줌도 안 되는 지방 권력은 나눌 것도 없기 때문에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현실적인 행보에 나선다. 어떤 이는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열어서 용역을 구걸하고 어떤 이는 문지방이 닳도록 관공서를 드나든다. 더 은밀한 것은 일과 시간 후의 사석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정치인이나 담당자는 아이디어와 실적이 필요하고 곡학아세가 특기인 학문했던 전문가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수가 용역을 통해서 자기 배를 불리는 가장 흔한 방법은 인건비 빼돌리기다. 실제로 용역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을 잔뜩 넣고 지급된 유령 연구진의 인건비를 되돌려 받아가는 식이다. 유령 연구진으로 대학원생들도 동원되지만 학부생, 졸업생, 동업자 등 입만 무거우면 누구라도 동원한다. 또 기자재, 비품 등을 구입할 때 비용을 부풀리는 방법도 있고 아예 깡을 해서 연구비를 빼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세세한 연구비 착복 방법이 아니다. 이런 일을 태연히 하는 교수, 이런 모습을 제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시전하는 연구자가 생각보다 많은 것이 문제이고 이런 인물들이 더 많은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런 용역 전문 교수들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을까.

예를 들어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9년간 공부해서 했다면 학부 130학점, 석박사과정 60학점을 이수했다고 할 때 총 2850시간 강의를 들은 것이 된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15주 수강하면 1학점이 된다는 가정에서 나온 계산이다.

여기서 맬컴 글래드웰이 지난 2009년에 제시한 ‘1만 시간의 법칙’을 잠깐 들여다보자. 그는 비틀즈나 모차르트 같은 시대적 천재들의 공통점을 설명하기 위해 이 개념을 제시했는데 천재성보다는 여건과 적어도 1만 시간은 공부해야 하는 노력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1만 시간이라면 대략 하루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10년을 연습한 것과 같은데 앞에서 계산한 박사과정 수료까지 수강한 시간의 3배가 넘으니 대략 한 분야를 30년쯤 공부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겨우 9년 정도 공부한 사람이 박사가 되니 여기도 박사 저기도 박사, 박사가 넘쳐나 박사인플레 현상을 보인지 오래다. 그런데다가 용역회사도 아닌 교수 개인이 학위와 직위를 내세워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는 분야의 자치단체 용역까지 한 해에 대여섯 건씩 쓸어 담는 곡학아세의 민낯을 드러낸다. 참으로 씁쓸한 불편한 진실이다.

하기야 용역보고서만큼 쓰기 쉬운 것도 없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서 내용을 숨기기 좋고 디지털 시대라서 ‘복사 붙여넣기’가 되니 더욱더 좋아서 ‘곡학아세’에 이보다 쉬운 건 없다. 그런데 비해 논문은 쓰자면 정해진 양식에 맞춰야 되고 까다로운 심사도 거쳐야 된다. 더구나 영구히 게시가 되니 속이기도 쉽지 않다.

그런 논문도 ‘곡학아세’하는 이가 가끔 있으니 용역전문가의 곡학아세는 그냥 땅 짚고 헤엄치기다.

강혜경 울산 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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