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공업화 계획 등은 기록 있지만
개발 참여한 산증인들 점차 사라져
더 늦기전에 울산 현대사 기록해야

▲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195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베이비부버 세대의 퇴직이 4~5년 전부터 본격화됐다. 은퇴 이후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속속 발표됐는데, 거기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것이 이 세대의 경험과 기록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이다. 그것은 국가와 지역 공동체를 위해서도, 또 개인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며, 사회변화의 속도를 감안할 때 시급한 과제이다. 한국사회는 모든 면에서 너무나 급속히 변해왔다. 외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의 거처가 부족해서 화장실을 방으로 개조해 빌려줬다는 울산 공업화 초기의 이야기는, 무협지의 한 대목 마냥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장생포에 조성된 고래문화마을에는 1970~80년대의 단편적인 풍경들이 ‘옛날’을 대표한다며 뒤죽박죽 재현돼 있는 실정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경험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역사는 알기 어려운 오래 전 과거를 대상으로 삼으며, 권력자의 이야기나 특별한 사건만을 다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감각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까지도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지배층의 특권이었다. 반면 보통사람들에 관한 기록은 극단적으로 드물었다. 왕실이나 양반에 대한 사료는 풍부하지만, 평민과 하층민의 생활을 알려주는 기록은 희귀하다. 우리는 주로 편중된 사료를 바탕으로 저술된 상류층의 역사만을 배워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돼, 지배층과 권력자만이 아니라 서민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됐다. 또한 구술사처럼 역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한 방법론도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1962년 2월3일 장생포 납도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이후, 울산에는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기억이 쌓여왔다. 정유공장과 발전소, 비료공장을 비롯해서 한국 최초의 자동자공장과 대규모 조선소가 건설됐다. 또 울산은 해방 이후 최초로 도시계획이 적용된 도시였다. 공단 철거민들이 이주해 갈 주택지구 계획에 따라 처음으로 도시개발이 진행된 곳이 월봉지구, 즉 지금의 신정동 일대였다. 대한주택공사가 1962~63년에 작성한 ‘월봉토지구획정리 실시계획’에는 학교와 공원, 시장 등을 배치한 격자형 가로와 주택지 건설 계획이 담겨 있다.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도시 계획이었지만, 자금 조달 곤란과 지주 반발 등으로 인해 계획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국가기록원에는 울산 공업화 초기, 정부가 세웠던 다양한 계획과 실행에 관한 기록이 보존돼 있다. 그렇지만 현지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변형된 내용이나 울산지역 원주민과 이주민이 당사자로서 감내했던 경험에 대한 것은 거의 담겨있지 않다.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진 이주의 실상, 공식 문서에는 기록돼 있지 않은 공장 건설로 인한 소음과 공해, 밀려들어온 이주민에 대한 기억, 일자리를 위해 혈혈단신 찾아온 청년 노동자들의 울산 경험은 개별 당사자의 기억 안에 고립돼 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1960~70년대 공업화 초기의 울산 현대사를 기록하는 일은 이미 어려운 과제가 됐다. 1960년대 울산 개발에 참여했던 관계자 대부분은 이미 자연수명을 다했다. 공업화 초기 단계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기억은 무관심 속에서 흩어지고 사라졌다. 1980년대 초에 입사한 세대가 벌써 은퇴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울산은 해방 이후 남한에서 건설된 최초의 공업도시이다. 당시에는 매연과 소음을 건설의 상징이라 여겼으며 공해에 대한 경각심은 사치에 가까웠다. 태화강에는 썩은 물과 악취가 진동했지만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희생이라 여겼다. 출근 때 회사 정문에서 복장 검사를 받고 머리카락이 잘리는 것을 묵묵히 감내할 정도로 인권 의식이 취약했던 시대였다. 공업화 관점에서 울산 현대사를 살펴보면, 환경, 생태, 문화,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새로운 가치의 부상은 각별한 울림을 준다. 울산 현대사는 더 나은 울산을 만들어가기 위한 초석인 동시에, 또 다른 울산을 꿈꾸는 후진 국가와도 공유할 가치가 있는 인류 보편의 기억이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어지기 전에 울산 현대사의 기록을 서둘러야 한다.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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