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창화 문화도시울산포럼 초대 이사장

2019년 고속철 SRT 여행잡지 10월호 표지에 울산 중구 ‘문화의 거리’ 사진이 실렸다. 거리풍경으로 울산큰애기 캐릭터와 ‘목호문화공간’‘ 건물이 소개되었지만 건물의 아름다움만 보여 주었지 그 건물이 간직한 스토리텔링이 없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도시 관광은 그 도시의 원도심에서 이루어진다. 유명거리는 특별한 먹거리와 볼거리로 소문을 만들지만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역사가 밴 아름다운 건축물과 거리에 세워진 조형물 속에 담긴 흥미로운 얘기거리다.

울산 원도심의 문화의 거리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50년대 울산인구 5만 정도일 때 성남동 네거리에는 울산의 첫 찻집 ‘가로수다방’이 있었다. 그 곳은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인 동시에 시민들의 유일한 문화활동 공간이었다. 음악감상회, 미술전시회, 시 낭송회, 시화전 등 실로 울산문화의 산실이었다.(홍수진 유고집 중 ‘울산의 문화사랑(舍廊), 목호문화공간’) 그 건물이 1980년대에 건물주가 바뀌고 리모델링으로 새 건물 ‘목호문화공간’으로 단장된 다음에는 명실상부한 울산 문화의 상징물이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9년, 오랜 기간 공사를 끝내고 가림막이 치워졌을 때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 그 때까지 울산의 건물들은 모두 미적인 요소는 아랑곳없이 한 뼘이라도 더 넓혀 임대에만 정신을 팔던 때였다. 주문으로 제작한 붉은 색 전돌과 연갈색의 화강석이 조화된 아름다운 건물외관은 울산의 건축문화에 큰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밤이 되면 창마다 은은히 비추는 작은 불빛과 벽등이 더 아름다운 3층 계단 입구에는 당대의 명필 여초 김응현 선생이 써준 ‘牧湖文化空間’ 현판이 걸려있어 이 공간의 의미와 건축물의 무게를 더하게 한다.

개인 건축물이라도 건물의 외관과 내부의 한 층 만은 도시의 문화자산으로 가꿔야 한다는 건축주의 신념은 개관 때 잘 나타난다. 실내공사를 끝내고 자기사업의 개업을 앞둔 1주일 전에 지역작가 초대 미술전부터 열었다. 아름다운 새집을 만들어 놓고 자기사업의 시작을 알리기 전에 첫 테이프 오픈을 무료대여 전시장 작가에 먼저 준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 후 건물주는 미국에 이민 갔으나 소유권은 그대로 유지됐으므로 3층은 대관료 없는 시민 문화활동(문학, 음악, 미술, 회의, 야간대학) 공간으로 계속 운영됐다. 10주년, 20주년은 문화단체 창립의 요람이 되어 기념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는 사용이 중지된 빈 공간으로 30주년을 보냈다. 여력이 없는 건물주에게 다시 무료운영을 요청할 수는 없다.

이 건물은 울산의 근대문화재가 될 수 있다. 공적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오랜 세월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명맥을 유지시킬 수 없을까? 시립미술관이 생겨도 대중들은 쉽게 이용할 갤러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절실한 것이다. 울산은 왕조시대 유산만 남아 있을 뿐 근대문화유산은 깡그리 없어진 도시다. 새 미술관 짓는다고 백년 전통의 학교와 70년대 도서관, 문화의 집 등 문화타운을 이루던 아까운 건축물을 모조리 없앴다.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져도 시민들은 관심이 없다.

도시인의 삶의 질은 문화로 좌우되는 법. 벽돌 한 장도 제대로 만들고 제자리에 놓아 졌을 때 문화가 되고 도시는 아름다워진다. 시민공동의 노력으로 문화자산을 가꾸어 울산에 사는 행복을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

정창화 문화도시울산포럼 초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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