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부드럽고 후덕한 얼굴의 석조보살님을 마주한다. 오랜만이라고 말을 건넨다. 어서 오시게. 보살님도 앙다문 입술에 담뿍이 미소를 지으며 맞아준다. 원형의 앙련 대좌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은 이 약왕보살은 삼층석탑을 향해 공양을 올린다. 한량없는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차가운 돌 속에 어떻게 이런 예쁘고 복스러운 모습이 감춰져 있을까 매번 감탄하며 바라본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앞에 있던 아름다운 석조보살이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해 박물관으로 들어가시고 말았다. 그래서 탑 앞에 놓인 약왕보살을 볼 수 있는 곳이 강릉의 신복사지가 유일하다. 어느 해 겨울, 하얀 눈 속에 푹 파묻힌 채로 나를 반겨주던 다정함에 홀딱 반해 다시 오리라 건듯 약속을 했다. 벼르고 벼르다 찾아와 그리웠다고 나도 몸 전체로 말한다. 동글동글한 두 뺨을 어루만지고 싶지만 감히 그럴 수 없어 팔각의 천개를 슬쩍 만져본다.

나도 한쪽 무릎을 꿇고 석조보살조상과 나란히 앉아 삼층석탑을 바라본다. 간명한 신라 탑과 확연히 구별이 된다. 석탑은 다채롭다. 지대석에는 화려하게 복련이 펼쳐지고, 아래층기단 면석에는 안상을 새겨 넣었다. 위층기단 아래에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굄돌이 끼워져 있다. 각층 몸돌과 지붕돌 사이에도 별석의 넓은 굄돌을 놓아 고려 초기 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보물 제87호 삼층석탑과 보물 제84호 석조보살좌상은 서로를 의지하며 천년의 시간을 온전하게 견뎌내고 있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 품의 소비공양탑 설화는 말하고 있다. 약왕보살의 전신인 희견보살은 자신의 두 팔을 잘라 7만2천년 동안 태워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그 진심어린 공양으로 약왕보살은 환희에 넘쳐 은근함을 넘어 드러내 놓고 웃고 있는 것이리라.

두 보물들과 친구하며 한참을 서성이다 저녁노을 비껴 앉은 절터를 내려온다. 또 오시게. 바람에 슬쩍궁 실려 오는 말에 자꾸 뒤를 돌아본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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