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애써도 안되는 간판 정비
가로수 버섯모양 가지치기로 해결
‘도시숲’ 조성이 더 효과적인 방법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결국엔 ‘되돌이’다. 간판 정비 말이다. 지자체들이 많은 예산을 들이고 어렵게 상인들을 설득해 간판 정비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만다. 게다가 간판을 정비해놓은 거리가 아름답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게의 특징을 살리지 못한 천편일률적인 간판 디자인 때문에 오히려 개성 없는 도시로 전락하기도 한다.

하여 ‘외면’하기로 마음먹은 지 꽤 됐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포기’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한계’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물론 필자는 실무자도 아니고, 상가 주인도 아니다. 다만 지자체의 위원회 등에서 ‘지적질’과 조언, 칼럼과 기사를 통한 방안제시조차도 한동안 멈출 수밖에 없었음의 고백이다.

간판의 목적은 소비자의 눈에 띄는 것이다. 그런데 지자체의 간판 정비는 크기와 숫자 줄이기, 색상 제한, 채도 낮추기 등으로, 될수록 시선을 끌지 않기를 강요한다. 근본 목적이 서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 ‘겨우’ 도시미관(美觀)을 하자고 ‘지독한’ 생계 문제를 억압하는게 가당키나 한가. 지속되기 어려운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던 거다.

그런데 ‘가로수가 없다면?’ 얼마 전, 성남·옥교 원도심을 한참 쏘다니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가로수가 도로 중앙선으로 옮겨진 문화의거리(옛 울산초등~울산다리)엔 간판의 크기가 작아지고 디자인이 좋아진 반면, 도로 양편으로 가로수가 이어지는 동~서 거리의 간판은 되레 점점 커지고 원색으로 바뀌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간판을 가리고 있는 가로수 정비가 답이 될 수 있으려나?’

우리나라 도시는 인도의 폭이 좁다. 그 좁은 인도에 가로수가 턱 버티고 서 있어서 간판이 죄다 가린다. 가로수 뿐인가. 전봇대와 가로등도 인도에 서있다. 그 사이로 간판을 드러내려니 더 크게, 더 튀어나오게, 더 밝게, 심지어 번쩍번쩍. 그러고도 가로수가 간판을 가린다며 가로수를 제거해달라는 민원은 전국적으로 수두룩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상호를 갖고 목적지를 찾아가면 간판이 눈에 안 띈다고 불평하게 된다. 그렇다고 오염물질 저감효과가 있는 가로수를 아예 없애기도 불안하다. 좁은 도로에 무작정 인도를 넓히기도 어렵다. 어쩔 도리가 없는 건가.

충주시는 최근 가로수를 버섯모양으로 디자인해서 간판 가림 민원을 해결했다. 40년 이상된 은행나무 가로수의 줄기를 5~6m로 길게 남기고 윗부분을 둥글게 자른 것이다. 간판 가림 민원은 물론 은행열매가 줄어들어 악취 민원까지 대폭 감소했다. 조경전문가들은 나무 건강에도 효과적이라 한다. 볼품없던 수형(樹形)이 개선되어 시각적으로도 좋다는 게 충주시의 자랑이다. 상극이었던 가로수와 간판이 기발한 가지치기로 어렵잖게 상생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아름다운 도시엔 대체로 간판이 작고 무채색에 가깝다. 색상과 크기에 대한 제한이 엄격하기도 하지만, 상가가 늘어선 도심에는 대체로 가로수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폭이 넓은 인도, 주택가, 공원과 강가엔 키 큰 가로수가 늘어서 도시의 멋을 더하기도 하지만, 상가가 많은 시내 중심가엔 크고 작은 공원들이 가로수를 대신해 ‘도시숲’ 역할을 한다.

뒤떨어진 도시미관의 죄를 공연히 건축물과 간판에다 뒤집어씌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원죄를 따지자면 간판보다 가로수가 먼저다. 그 다음, 아름다운 간판과 건축물을 요구할 일이다. 그리곤 가로수 대신 ‘도시숲’이다. 헝클어진 실타래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ulsan1@ksilbo.co.kr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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