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이나 기념공간 만드는 일
도시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
시민의 참여·소통으로 이뤄져야

▲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태화강변에서 멋진 조망을 자랑하는 태화루는 어느 시대의 유적일까. 2011년에 공사에 착수해서 2014년 4월에 준공된 이 누각은 엄밀히 말해 21세기의 건축물이다. 물론 울산광역시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해 디지털 정보를 제공하는 <울산역사문화대전(ulsan.grandculture.net)>에서 ‘태화루’를 검색해보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유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선덕여왕 때인 643년 자장대사가 태화사를 세울 때 함께 건립했다는 역사적 기원도 전해진다. 그렇지만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멸실되어 버렸기 때문에, 400여년이 흐른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위치나 규모, 모양을 알 길이 없다.

지금 세워져 있는 태화루에는 기록상으로만 전하는 태화루의 돌 조각 하나 포함되어 있지 않다. 누각 모양은 조선시대 영남을 대표하는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를 본떴는데, 그것 역시 기록으로 전하는 역사 속의 실제 태화루와는 별 상관이 없다. 모든 건축부재나 기술 역시 현대의 것을 사용했다. 수천 년을 흘러온 태화강만이 옛 정취를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왜 쓰임새도 불분명한 과거의 건축물을 복원할까. 2008년 국보 1호 서울 남대문이 불에 탔을 때도 재건축 여부를 둘러싸고 이견이 많았다. 아무리 비슷하게 복원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예전의 문화유산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자란 금강송과 전통 기술을 사용하기로 하는 등 조건을 달아 복원을 했지만,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과거가 없는 장소는 없다. 울산지역에도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다양한 이야기와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멸한 수많은 흔적들 가운데 하필 특정한 유적이나 건축물을 복원하는지, 또 어떤 이유로 특정 사건과 사람을 기리는 조형물이나 기념물을 세우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백히 시민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장기적으로 도시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간의 생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이야말로 지배와 저항, 억압과 혁명의 핵심 쟁점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태화루를 거닐고, 학성공원과 대공원의 조형물을 만난다. 그런 공간들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에 따라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공간 체험을 통해 우리는 울산이라는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공간의 생산’, 곧 유적지나 기념물을 만드는 일은 어떤 도시 정체성을 추구할 것인지, 도시의 문화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와 직결되어 있다. 앞에서 소개한 <울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울산 지역민은 오랫동안 태화루 중건을 갈망해 왔으며 그런 여망 속에서 태화루가 중건되었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고건축을 거창하게 중창하는 것이 필요하거나 의미있다고 믿는 누군가에 의해 건설이 결정되었으며, 역사 속의 실제 태화루와는 무관한 현재의 태화루에는 ‘유구한 전통’에 대한 그들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시민들은 사실상 완공된 태화루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누가 어떻게 ‘공간의 생산’을 결정하는지를 보면 그 도시가 얼마나 민주적이며 개방적이고 소통적인지를 알 수 있다. 관이나 특정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기념물과 조형물이 세워지고 공간의 의미가 생산되는 방식을 이제는 극복해야 할 때가 되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논의가 지지부진하더라도 시민들이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한다. 지역 정체성을 담은 새로운 기억의 장소, 기념 공간, 조형물을 만드는 일은 건축공사 그 이상이다. 그 의미를 둘러싸고 다양한 소통이 일어날수록 더욱 바람직하다.

울산을 대표하는 조형물인 공업탑과 신복로터리의 제2공업탑은 울산의 정체성을 웅변한다. 그러나 공업센터지정과 공업화 과정이 그러했듯이 이 탑들 역시 일방적으로 ‘하사’된 것이었다. 1960~1970년대의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그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우리 도시에서 추진할 ‘공간의 생산’과 갖가지 기념사업은 민주적 개방성과 참여 위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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