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은 정당들이 명멸 되풀이
거창한 정당이름보다 알맹이가 중요
고심한 당명만큼 오래오래 존속되길

▲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헌법 제8조 제1,2항)’ 우리나라에는 무수히 많은 정당 이름이 있다. 정당명을 적은 투표용지를 다 읽기도 쉽지 않을 정도이다. 여기에 새로운 정당의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됐다. ‘국민의힘’.

정당의 궁극적 목적은 정권을 장악하는데 있다. 정당의 이름은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고 싶겠는가. 정당의 이름을 무엇으로 하는지는 그 당 구성원들의 자유다. 페트릭 헨리의 1775년 3월23일 명연설을 발췌해 본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쇠사슬과 노예화란 대가를 치르고 사야 할 만큼의 우리의 목숨이 그렇게도 소중하고 평화가 그렇게 달콤한 것입니까.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자유의 나라 미국. 하지만 ‘자유당’ 이름은 미국의 대세가 아니다. 미국은 여러 당이 있지만 공화당과 민주당 말고는 관심이 없다.

일본은 오랫동안 자유민주당의 독주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공명당, 보수당, 일본사회당, 민사당, 일본공산당 등이 있지만 자유민주당을 대적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토리당과 휘그당으로 정당의 역사가 시작됐다. 토리당은 보수당, 휘그당은 자유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후에 노동당이 나타나서 지금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양당체제이다. 보수당은 자본가, 자유당은 산업가와 소시민이 지지층이었는데 이제 자유당은 노동당보다 소수파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는 인종과 생각의 다양성만큼 다당제로 구성돼 있다. 독일은 독일기독교민주연합, 독일사회민주당, 독일을 위한 대안, 자유민주당, 좌파당, 녹색당 등의 다양한 이름들이 있다. 역사책에서 프랑스는 혁명후 급진적인 자코벵당과 온건파인 지롱드당이 있었다. 지금은 앙마르슈, 공화당, 민주운동, 사회당, 민주당, 프랑스공산당, 국민전선 등등 다양하다.

한국도 뒤질새라 수많은 정당이름이 명멸했다. 이것만 정리하는 학문이 필요할 정도다. 자유당, 공화당, 민주정의당, 신한국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해방이 된 이래 집권당으로서 역할을 오래한 물줄기이다. 이에 대해 한국민주당, 진보당, 신민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새정치연합, 더불어민주당. 최근 여당이 되었고 또 다른 하나의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당, 정의당 등 새로운 영역의 물길이 있다. 정당명에 쓰인 단어를 보면 자유, 민주, 공화, 정의, 한국, 국민 등이다.

한국국민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정치적인 담론을 즐겨하는 편이다. 이 나라에서 일어난 역동성과 복잡성이 그 담론의 에너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조선왕조의 붕괴, 일제치하, 비극적 동족상잔의 전쟁, 경찰국가, 권위적 국가운영, 민주화를 외치던 시대를 겪었다. 학생들과 젊은이들은 취업준비생이 되어 기회의 공정을 바라고, 대신 여러 단체들이 여의도와 광화문을 메우고 있다. 학력으로는 어느 나라에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국민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리가 있는가. 막상 토론하면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이 다름을 전하고 또 상대의 자신과 다른 생각이 존재함을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 미숙함만 빼면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북한간 냉온탕을 오가고, 중국과 미국의 경제전쟁, 일본과 한국의 갈등, 여기에 더해 팬데믹을 선언한 코로나까지. 어지러운 정세에 무엇이 옳다고 선뜻 말할 수 없는 나라. 국민의 건강한 담론은 야당은 수권을 준비하게 하고 여당은 실권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니. 고심한 각 당의 당명이 오래오래 존속되고 지지를 얻어 수권 또는 유지를 바란다. 아무렴 수준 높은 한국의 정치소비자가 포장지를 구별 못하랴. 수식어로 아무리 현혹을 해도 보수는 보수당, 자유는 자유당, 민주는 민주당. 우리는 이름보다 알맹이를 원한다.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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