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진 나은내일연구원 이사

최근 아동학대로 주목받는 사건들을 살펴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경남 ‘창녕사건(편의점 사건)’은 네 명의 아이를 24시간 집에서 돌봐야 하는 육아 스트레스와 남편의 실직, 조현병 등이 작용한 것으로 수사가 진행되면서 7~10년을 구형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충남 ‘천안사건(여행가방 사건)’ 역시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가 조현병을 주요 이유로 들었으나 22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조현병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진주 아파트 방화사건’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벌어진 ‘라면형제 화재사건’의 경우 아이 둘을 혼자 키우던 어린 엄마가 반복된 학대와 방임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역시 생활고와 육아 스트레스에 의한 조현병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현병은 생각보다 흔한 질병이다. 인구 100명 가운데 1명이 갖고 있을 만큼 우리 주변에서 제법 접할 수 있다. 조현병은 다른 질병에 비해 약물치료로 증상이 개선되는 비율 역시 비교적 높게 나타난다. 이를 빨리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고 있더라도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면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환자가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경우도 흔하다. 결국 조현병에 대한 이해부족과 주변사람들의 무관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조현병을 앓고 있거나 이로 인해 학대 받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와 지자체에 관련 정책이 부족하거나 시스템이 미비해서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게 아니다. 정책과 시스템은 아무리 완벽을 기하려 해도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결국 개인과 가족에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돌봐야 하는 것이다.

며칠 전 울산시와 시의회,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함께 개최한 ‘아동학대예방포럼’에서도 토론자로 나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방안이 있었다.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가 함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질리언스(회복력) 체계 구축으로 지역사회가 사회안전망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데 뜻을 모았다.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다. 이 사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복지 전달체계로 주목받기도 한다.

커뮤니티 케어는 주민들이 살던 곳에서 개인 욕구에 적합한 주거와 보건의료, 요양, 돌봄 등 사회서비스를 누리게 하는 한편,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부터 1단계 선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6개 기초지자체(노인분야 13, 장애인분야 2, 정신질환분야 1)가 지역 특성을 반영해서 자율적으로 사업을 개발한 뒤 욕구에 맞춰 여러 사회서비스를 연계하거나 통합해서 제공한다. ‘읍·면·동 케어통합창구’를 통해 지역사회 독립생활을 지원하고, 지자체에 ‘지역케어회의’를 설치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울산시도 코로나19 등 재난 상황에 따른 지역복지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그에 맞는 프로세스 구축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정책자문 기구인 ‘미래비전위원회(시민복지증진분과)’도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 및 전달 체계 혁신을 위한 구조 마련 △돌봄경제 활성화를 통한 울산형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복지서비스와 보건의료서비스의 다차원적 협력 및 연계 체계 구축을 핵심으로 향후 운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최근 아동학대 동향과 정부의 정책적 흐름을 살펴보면 조현병과 저소득 한부모가정에 대한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한편 적절한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강력범죄를 줄여나가야 한다. 울산시와 각 구·군도 이런 정책적 흐름을 사업에 담아 아동학대를 줄이고, 아동학대가 일어나더라도 지역사회가 함께 돌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승진 나은내일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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