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 역행 인종차별 부추기고
애국심 자극 득표전략 펼친 트럼프
애호하는 영화같은 인생 맞을진 의문

▲ 한규만 울산대학교 교수 영문학

트럼프 대통령의 영화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꽤 넓다. 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전인 지난 2월, 유세 도중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Parasite>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에 대해 “빌어먹을(freaking)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탔다”고 말하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와 같은 미국 영화가 다시 오스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 가수 겸 배우 베트 미들러는 트럼프에게 “당신이 기생충”이라고 반박하면서, “나는 백악관에 기생충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화가 난다”고 적었다.

두 사람의 발언은 서로 다른 입장과 인식의 차이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트럼프의 발언은 정치인으로서 대선 유세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미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하면 득표에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을 깔고 있다. 미들러의 발언은 영화예술인의 순수한 입장에서 예술적 관점에서 좋은 작품에 상을 준 것이라는 인식이 뒷받침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부동산 사업가일 뿐만 아니라 조연급 영화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7편 이상의 공포, 판타지, 로맨스 영화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한국에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 영화 <나 홀로 집에 2>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인공 케빈에게 길을 알려주는 중년 남성으로 출연했다.

트럼프가 좋은 영화라고 거론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미국의 남북전쟁과 재건시대에 사랑과 야망을 탁월하게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1940년 아카데미상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8개 부문을 휩쓰는 기록을 세웠다. 원작 소설은 남북전쟁(1861~1865)이 발발하기 전, 평온한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여주인공 타라의 농장주 큰딸 스칼렛 오하라는 당차고 자기주장이 강한 미모의 여성이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이 여주인공의 인생역정을 추억의 영화로 기억한다.

그러나 국민 통합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작품이 인종차별 관념을 고착화하고, 백인우월주의단체 ‘큐 클럭스 클랜(KKK)’의 폭력을 미화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2017년 8월, 테네시 주 멤피스의 명소 오피엄 극장(Orpheum Theatre)은 지난 34년간 여름 특선 영화제에서 꾸준히 선보인 이 영화에 대해 ‘인종적 몰이해가 드러난 작품’이라는 비난에 대응하여 영화제 목록에서 퇴출을 공표했다. 2020년 6월 BBC 보도에 따르면, HBOMax는 고수익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상영 중지 성명을 통해 ‘인종 차별적인 묘사가 과거에도 잘못됐고, 오늘날도 틀린 일’이라고 밝혔으며, 아무런 설명 없이 상영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컬처타임즈). 그러나 이러한 시대흐름에 역행하여 2020년 트럼프는 공공연히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득표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그밖에 트럼프가 정말 애호하는 영화로 <시민 케인 Citizen>(1941), <람보 Rambo>(1982), <혈투 Bloodsport>(1988)가 손꼽힌다. <시민 케인>은 언론인 케인이 정치인으로 변모하는 이야기로 실제 트럼프의 인생역정과 상당히 유사점이 있다. 주인공 찰스 케인은 상속받은 막대한 부를 등에 업고 언론 사업을 시작해 성공을 거둔 뒤, 정치에 뜻을 품고 대중적 인기를 얻지만, 수잔과의 스캔들 이후 실패를 겪는다. 자기애가 투철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저돌적으로 획득하지만 결국 그의 곁을 지키던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씩 잃는다(세계영화작품사전). 모든 것을 얻었던 그는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는다. 트럼프의 인생 결말이 영화 주인공 케인과 같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람보>와 <혈투>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된다.

한규만 울산대학교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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