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화원연합회 ‘울산문화연구’ 1945년 이전 교육기관 정리
조선시대 향교·서원·서당부터 현재 울산초·언양초 등 소개

▲ 울산국민학교 저축광경(1962년 촬영)과 울산향토사통합연구지 <울산지역문화연구> 제8호 표지(오른쪽).

울산광역시문화원연합회(회장 김성용·남구문화원장)가 근대화 이전의 울산지역 교육시설(기관)들을 정리해 한 권으로 묶었다. 시교육청과 일선학교가 아니라 울산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조명해 온 시문화원연합회가 처음으로 울산의 교육과 관련한 기록물을 더듬어 정리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문화원연합회는 <울산지역문화연구> 제8호 기획논단으로 ‘1945년 이전 울산의 교육기관’을 다뤘다. 김성용 회장은 “광복 이전의 울산 교육사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국교육사에서 최초 군에 해당되는 교육 기관으로는 고구려의 태학과 경당, 신라의 국학 정도로 정리된다. 고려에서는 지금의 국립대학 격인 국자감과 지방 군현의 관립학교인 향교가 있었다. 기획논단 내용에 따르면 당시 울산에 향교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조 동경(경주)에 향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울산의 호족 자제들이 수학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당시 울산에서 고려죠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박추(朴諏)와 예의판서를 지낸 김비 등이 범서 사량동(지금의 서사)에 초가를 짓고 후학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확인가능한 기록은 조선시대부터다. 관학 향교와 사학 서원, 서당에 해당된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울산향교와 언양향교 등은 1488년(성종19) 일읍일교 체제가 완성되면서 함께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학으로는 중구 구강서원, 북구 학호서원, 남구 용연사가 중건되거나 훼철됐다. 서당은 삼일당, 거강재, 양사재, 매헌정사, 청수헌, 죽초정사, 양진서실, 복재서당, 영모당, 괴천초당, 봉산정사, 퇴학헌, 무민당, 오암서당, 덕동서당, 무릉서당, 학서서사, 석천서사, 기산서당, 득락당 등이 있다.

이후 대한제국기로 넘어오면 근대교육기관인 사립 개진학교, 사립 광남학교가 1905년 문을 연다. 개진학교의 경우 1903년 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듬해인 1906년에는 언양에서 영명학교가 개교했다. 같은해 지금의 울산시 중구 병영에는 병영성 제남관 건물에 사립 일신학교가 설립됐다. 당시 울주군 동면소재지 남목에서는 목관아의 일부를 보수해서 개운학교가 문을 열었다. 같은시기 울산에는 보명학교, 서흥학교, 입신학교, 진명학교, 보성학교, 원창학교, 언양학숙 등의 사립학교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초기의 교육기관으로는 울산공립보통학교(현 울산초)와 언양공립보통학교(현 언양초)가 있다. 울산거주 일본인 자녀를 위한 울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현 양사초)와 방어진심상고등소학교(현 방어진초)는 광복을 맞을 때까지 존속했다.

이번호 논단은 서금자 중구문화원이사, 송철호 남구향토사연구소장,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장, 박중훈 북구향토사연구소장, 장성운 울주문화원이사 5명이 중·남·동·북구와 울주를 각각 나누어 기술했다. 이들은 울산교육에 관한 기존의 연구성과물을 정리했다면서 비슷한 자료와 내용에서 한계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새로운 자료발굴을 위한 노력과 연구방향의 다각화와 세분화가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비매품.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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