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당 권력 독주로 3부 분립 훼손
적폐논란·법관탄핵 등으로 이어져
견제와 균형 파괴땐 국가역량 후퇴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여러모로 힘든 시기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의 역량이 더욱 절실하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요소로 비르투스(virtus, 역량)와 포르투나(fortuna, 행운)를 들고 있다. 지도자를 국가나 정부로 바꾸면, 어느 나라나 역량과 행운이 따라야 제대로 된 정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행운이라는 것은 변덕스러운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므로, 결국 중요한 것은 운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또는 정부의 역량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민주국가는 일반적으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국가의 역량은 이들 3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좌우될 것이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입법부는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통합하여 공통의 이익을 도출한 법을 제정하고, 행정부는 효율적으로 법을 집행하며, 사법부는 이익을 침해당한 국민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으면 국가의 역량이 제대로 갖춰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3부가 서로 견제하며, 어느 한 권력이 독주하지 못하도록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국가역량 확보의 핵심적인 요건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행정부가 독주하면서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했던 경우를 생각해 보면, 3부의 균형 파괴가 국가의 역량을 크게 훼손시킨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입법부, 보다 구체적으로는 국회 다수당의 과잉 활동이 상대적으로 행정부와 사법부의 역할을 제약함으로써 전반적인 국가 역량의 후퇴를 초래하고 있다.

우선 법안 작성과 심의 시에 행정부의 의견이 묵살되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예컨대 재난지원금의 대상과 규모, 국가채무관리 방향 등에 대한 결정에서 행정부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행정부는 오랜 기간 동안의 정책경험으로 전문성을 갖춘 관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다수당과 의견이 다를 때는 ‘적폐’로 간주될 뿐이다. 행정 관료들에게 ‘선출직’이 정한 대로 무조건 따라올 것을 요구한다. 입법권과 행정권은 서로의 관점에서 토론하고 조율하여 최선의 정책을 도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를 국회 다수당의 하부 집행기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로 인한 국가역량의 저하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우선 행정부의 정책경험이 반영되지 못하여 정책의 전문성과 합리성이 떨어진다. 또한 정책의 집행은 결국 관료들이 담당하게 되는데 결정과정에서 소외되고 ‘적폐’로 찍혀 사기가 저하된 관료들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집행을 할 수 있겠는가.

사법부는 특정 그룹 출신 법관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법관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되었다. 사법부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여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법관 탄핵은 이런 사법부 역시 다수당의 영향력 하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또한 집권세력의 요구와 다른 판결을 할 때마다 사법부도 ‘적폐’로 몰아가고 있으며,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법관들은 대거 사법부를 떠나고 있다.

입법부 다수당의 권력독주가 견제와 균형의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며 행정부와 사법부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국가역량의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자원이 풍부하고 지리적 이점이 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역량이 형편없어 국민들이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나라가 한 둘이 아니다. 이런 나라들의 공통점은 삼권 중 어느 하나가 비정상적으로 강해서 서로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북핵, 경제침체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국가의 비르투스가 절실한 시점이다. 국가역량을 훼손하는 입법부 다수당의 독주를 자제하고 삼권의 균형이 회복되어야 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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